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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 40년 만에 대학(LAVC) 캠퍼스로 돌아갔다. 팬데믹 동안에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가을 학기부터는 거의 모든 미술 클래스가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듣는 과목은 ‘수채화 I’이다. 첫날 수업에 들어가니, 작년에 온-라인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60대 중반. 대충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서, (2) 교양과목 학점이 필요해서, (3)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수업을 듣는 이들은 대개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처럼 정식으로 등록을 해서 과제물도 제출하고 시험도 보아 학점을 이수하려는 사람과 그냥 수업에 들어와 성적의 스트레스 없이 그림만 배우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늦은 .. 2023. 9. 30.
당신 얼굴 앞에서 ‘홍상수’ 영화의 매력이라면, 영화가 단편소설 같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와 내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애처롭고 애잔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질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이기도 하다.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왕년의 여배우 ‘상옥’(이혜영)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상옥이 여동생 ‘정옥’(조윤희)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메모를 끼적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잠에서 깬 정옥이 언니를 데리고 맛있는 토스트를 파는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매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으며, 정옥이 미국에서 주류 판매점을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날 오후, 상옥은 만나자고 몇 번 전화를 해 온 영화.. 2023. 9. 17.
목요일 살인 클럽 ‘목요일 살인 클럽’은 실버타운 ‘쿠퍼스 체이스’에 사는 네 사람, ‘엘리자베스,’ ‘론,’ ‘이브라힘,’ 그리고 ‘조이스’가 목요일에 만나 미제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엘리자베스와 형사출신 ‘페니’가 처음 만든 것인데, 최근에 치매에 걸린 페니 자리에 조이스가 들어왔다. 쿠퍼스 체이스는 과거 수녀원이 있던 자리다. 현 소유주 ‘이언 벤텀’이 건업자 ‘토니 커런’과 함께 은퇴촌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언은 근처의 땅을 더 매입해서 ‘우드랜드’라는 이름으로 크게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가 사람들을 모아 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큰 소동이 일어난다. 수녀들이 묻혀있는 땅을 개발하자면 묘지를 파헤치게 되기 때문이다. ‘매튜 멕키’라는 신부가 나타나 강력히 반대한다. 이언은 새로 개발을 해서 얻게 .. 2023. 9. 10.
여자아이 기억 1958년 여름, 프랑스 오른의 한 여름방학 캠프에 강사로 갔던 18세의 소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캠프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지하창고에서 깜짝 파티가 열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책임지도강사인 H와 춤을 추고 섹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사랑의 행위가 아니고 성폭력에 가까운 일방적인 섹스였다. 욕심을 채운 H는 바로 그녀를 버린다. 소문이 퍼져 동료 강사들은 그녀를 창녀라 부르고, 남자들은 그녀를 그래도 되는 아이로 여기며 희롱한다. 남자가 원하는 섹스와 여성이 기대하는 섹스의 차이다. 그 후 그녀는 섭식장애를 앓았고, 그로 인해 한동안 생리를 하지 못했다. 2022년 노벨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2016년 작품 ‘여자아이 기억’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다. 18세의 나.. 2023. 9. 8.
수채화 I (1) 40년 만에 LAVC 캠퍼스로 돌아갔다. 지난 세 학기 동안은 온-라인 수업을 들었는데, 팬데믹이 끝나 가을부터는 대부분의 클래스가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교정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지금도 공사 중인 건물도 있다. 40년 전에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미국식 개보수 사업이다. 한꺼번에 다 밀어 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공터에 새 건물을 지어 일부 옮긴 후, 옛 건물을 보수해서 또 이사를 하고, 그다음 건물을 고치는 식이다. 이번 학기에는 Water Color(수채화) I을 듣는다. 교수는 1년 반 전에 첫 클래스로 선택했던 Drawing I을 가르쳤던 David Bishop이다. 나보다 몇 살 나이가 많은 듯 보이는 노 교수다. Access 밴을 예약해서 타고 갔는데, 원하.. 2023. 9. 4.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하루키가 1981-1983년 사이 작은 잡지에 연재했던 18편의 단편을 엮은 작품집이다. ‘도서관 기담’을 제외하고는 모두 400자 원고지 8-14매 정도의 짧은 소설들이다. 훗날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장편 소설이 된 도서관 기담은 6회에 걸쳐 연재를 했다고 한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는 하루키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의 장편 ‘1Q84’의 시작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1981년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에, 하라주쿠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난다. 그 여자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이미 서른에 가까울 정도다. 그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 2023.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