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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여자아이 기억

by 동쪽구름 2023. 9. 8.

1958년 여름,  프랑스 오른의 한 여름방학 캠프에 강사로 갔던 18세의 소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캠프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지하창고에서 깜짝 파티가 열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책임지도강사인 H와 춤을 추고 섹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사랑의 행위가 아니고 성폭력에 가까운 일방적인 섹스였다. 욕심을 채운 H는 바로 그녀를 버린다. 소문이 퍼져 동료 강사들은 그녀를 창녀라 부르고, 남자들은 그녀를 그래도 되는 아이로 여기며 희롱한다.

 

남자가 원하는 섹스와 여성이 기대하는 섹스의 차이다. 그 후 그녀는 섭식장애를 앓았고, 그로 인해 한동안 생리를 하지 못했다. 

 

2022년 노벨상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2016년 작품 ‘여자아이 기억’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다. 18세의 나이에 겪은 남성과의 첫 경험은 그녀에게는 써야만 했지만 오랜 세월 쓸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모두 돌아가고픈 시간이 있다. 어떤 시간은 아쉬움 때문이고, 또 다른 시간은 수치심 때문이다. 아쉬운 시간은 다시 돌아가 다른 길로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며, 수치심의 시간은 돌아가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고 하지 않았나. 과연 그럴까? 

 

이 책은 18세 소녀의 성장 소설이며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수치심을 극복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솔직히 남자인 나는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책은 읽기 어렵게 쓰여 있다. 인물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구와 절이 곳곳에 들어 있어 글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 옆집 – 그 무렵 우리는 역촌동에 살았다 – 남자 – 그는 택시 기사였다 – 는 매일 기사 식당에서  – 돼지 두루치기로 유명한 – 밥을 사 먹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간은 사람에 따라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치유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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