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202 허송세월 김훈은 ‘프롤로그’ 대신 ‘앞에’라는 제목의 글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부고다. 그는 부고(죽음)가 그다지 두렵지 않다고 썼다.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로 돌아가고, 내가 쓴 글 몇 줄이 세월에 풍화되어 먼지로 흩어지고…” (7 페이지) 이 대목에서 나는 차고에 쌓아 놓은 책들과 브런치에 올려놓은 1,000 꼭지가 넘는 글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라지고 나면 결국은 글들도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리겠구나. 그는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와인의 맛은 로맨틱하고, 그 취기의 근본은 목가적이다… 막걸리는 생활의 술이다. 막걸리는 술과 밥의 중간쯤 되는 자리에 있다… 소주는 대중의 술이며 현실의 술로서 한 시대의 정서를 감당해 왔지만 풍미가 없고 색감이.. 2025. 4. 22.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 인터넷 서점은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골라 살 수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책을 집어 들고 펼쳐 이곳저곳을 읽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책 내용의 소개나 서평 등이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에서 쉽게 책의 내용이나 서평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70대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생의 후반부를 사는 노인이 쓴 다소 철학적 에세이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작가는 잊는 힘에 대한 글로 책을 시작한다. 생후 20개월 무렵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고 입양이 되어 성장한 그는 70대에 마침내 생모의 불단(가정에 고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에 .. 2025. 3. 27.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시대가 변하면 소설이나 영화도 변한다. 요즘 나오는 범죄/미스터리 소설에는 기발한 플롯,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연달아 반전이 이어져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40-50년대 영화는 분위기가 다르다. 영상이 흑백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페이스도 급하지 않다. 범죄 소설도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유형이 문학적이다. 작가 ‘로런스 블록’의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바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전직 경찰인 주인공 ‘매슈 스커더’가 10년 전인 1975년에 벌어진 일들을 회고하는 행식이다. 그는 강도를 체포하는 과장에서 사고로 어린아이.. 2025. 3. 13. 무라카미 T 중고책방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하루키의 책을 발견하면 무조건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그의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나 잡문도 좋아한다. 하루키에게는 일상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무엇 하나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무라카미 T’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그가 LP판을 좋아하며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중고 레코드 가게에 들러 LP판을 사서 모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티셔츠도 모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작정을 하고 티셔츠를 모은 것은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홍보용 티셔츠를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기념 티셔츠를 받고, 여행을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그러다 보니 서랍에 못다 넣고 상자에 담아 쌓아 놓게 되었다고 한다. 레코드 수집에 대한 .. 2025. 2. 21. 이전 1 2 3 4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