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20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시대가 변하면 소설이나 영화도 변한다. 요즘 나오는 범죄/미스터리 소설에는 기발한 플롯,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연달아 반전이 이어져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40-50년대 영화는 분위기가 다르다. 영상이 흑백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페이스도 급하지 않다. 범죄 소설도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유형이 문학적이다. 작가 ‘로런스 블록’의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바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전직 경찰인 주인공 ‘매슈 스커더’가 10년 전인 1975년에 벌어진 일들을 회고하는 행식이다. 그는 강도를 체포하는 과장에서 사고로 어린아이.. 2025. 3. 13. 적의 화장법 기술적인 문제로 비행기 출발이 늦어져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한 사내가 말을 건다. 앙귀스트는 책을 읽으려 하는데 사내는 계속 그에게 말을 건다. 자신은 네덜란드 사람이며, 이름은 ‘텍스토르 텍셀’이라고 한다. 결국 앙귀스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방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여덟 살 때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체육을 잘하던 급우 ‘프랑크’를 질투하여 그를 죽여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 끝에 건강하던 아이가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 살던 그는 매일 세 마리의 고양이에게 통조림 생선에 밥을 섞어 먹이로 주어야 했다. 어느 날 그 밥을 한 움큼 집어 먹은 후, 고양이 밥을 계속 뺏어 먹게 되었다. 스무 살 무렵에는 파리의 공동묘지에서 만난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 2023. 8. 16. 모스크바의 신사 작가 ‘에이모 토올스’의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한글 번역본의 길이가 717페이지에 달하는 매우 긴 장편소설이다. 아마도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본 책 중에 가장 분량이 긴 책이 아니었나 싶다. 2016년 발표된 이 소설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2017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꼽았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티셀러 목록에 50주 이상 이름을 올렸다. 1922년, 구시대의 귀족인 33 살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평생 감금되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크고 편안한 객실에 장기투숙하고 있던 그는 달랑 옷가지와 몇 가지 물건만 챙겨 다락방으로 쫓겨난다. 하지만 그는 신사로서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고 새 삶에 적응하여 호텔에서 살아간다. 감금된 삶 속에서 .. 2023. 5. 26. 붉은 손가락 평범한 가장 ‘마에하라 아키오’는 어느 날 회사에서 아내 ‘야에코’의 전화를 받는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아내의 말에 곧바로 퇴근해 집으로 가던 그는 도중 우연히 들른 슈퍼마켓에서 없어진 딸아이를 찾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디 정원 위의 검은 비닐. 비닐 아래에는 낯 모르는 여자아이의 시체가 놓여 있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니, 아들 ‘나오미’가 여자애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신고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부부는 결국 한밤중에 시체를 집 근처 공원에 내다 버린다. 다음날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이들 부부의 집에도 형사가 찾아오고,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해 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가가형사는 두 부부를 의심하며 차츰 수.. 2023.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