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86 허송세월 김훈은 ‘프롤로그’ 대신 ‘앞에’라는 제목의 글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부고다. 그는 부고(죽음)가 그다지 두렵지 않다고 썼다.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로 돌아가고, 내가 쓴 글 몇 줄이 세월에 풍화되어 먼지로 흩어지고…” (7 페이지) 이 대목에서 나는 차고에 쌓아 놓은 책들과 브런치에 올려놓은 1,000 꼭지가 넘는 글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라지고 나면 결국은 글들도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리겠구나. 그는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와인의 맛은 로맨틱하고, 그 취기의 근본은 목가적이다… 막걸리는 생활의 술이다. 막걸리는 술과 밥의 중간쯤 되는 자리에 있다… 소주는 대중의 술이며 현실의 술로서 한 시대의 정서를 감당해 왔지만 풍미가 없고 색감이.. 2025. 4. 22. 유화 (3) 이번 학기 처음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과제를 받았다. 그와 함께 유화 물감과 쓸 수 있는 보조제에 대해서도 배웠다. 유화물감은 그냥 캔버스에 칠하기에는 다소 뻑뻑하기 때문에 보조제를 섞어 쓴다. 이제껏 사용한 것은 터펜틴이었다. 터펜틴은 휴발성이 강해 물감이 빨리 마른다. 이미 마른 물감도 녹여, 이를 이용해 그림을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탕 위에 새로 물감을 입힐 때 자칫 마른 물감이 녹아 새것과 섞이기도 한다. 이보다 휴발성이 덜한 리퀸을 이미 발라놓은 물감을 녹이지 않아 덧칠이 가능하다. 유화의 장점이며 단점은 물감이 더디 마른다는 것이다. 보통 유화 물감은 3일 정도 지나야 그 위에 물감을 칠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르지만, 리퀸은 6시간 정도 지나면 가능하다. 터펜틴은 30-40분이면 마른다.. 2025. 4. 8. 고해성사 지난 주일,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았다. 50대에 신자가 된 후, 매년 한두 차례 하는 일이다. 고해성사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지난 삶과 언행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잘못한 일들을 깨닫고(성찰), 뉘우치며(통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결심), 신부님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고백), 죄 사함을 받은 다음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보속) 받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었으면 적절한 보상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그 후에는 다소 회의적인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신부님에게 낱낱이 고백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진심.. 2025. 4. 5.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 인터넷 서점은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골라 살 수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책을 집어 들고 펼쳐 이곳저곳을 읽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책 내용의 소개나 서평 등이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에서 쉽게 책의 내용이나 서평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70대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생의 후반부를 사는 노인이 쓴 다소 철학적 에세이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용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작가는 잊는 힘에 대한 글로 책을 시작한다. 생후 20개월 무렵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고 입양이 되어 성장한 그는 70대에 마침내 생모의 불단(가정에 고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에 .. 2025. 3. 27. 이전 1 2 3 4 ··· 1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