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처음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과제를 받았다. 그와 함께 유화 물감과 쓸 수 있는 보조제에 대해서도 배웠다. 유화물감은 그냥 캔버스에 칠하기에는 다소 뻑뻑하기 때문에 보조제를 섞어 쓴다. 이제껏 사용한 것은 터펜틴이었다. 터펜틴은 휴발성이 강해 물감이 빨리 마른다. 이미 마른 물감도 녹여, 이를 이용해 그림을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탕 위에 새로 물감을 입힐 때 자칫 마른 물감이 녹아 새것과 섞이기도 한다.
이보다 휴발성이 덜한 리퀸을 이미 발라놓은 물감을 녹이지 않아 덧칠이 가능하다. 유화의 장점이며 단점은 물감이 더디 마른다는 것이다. 보통 유화 물감은 3일 정도 지나야 그 위에 물감을 칠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르지만, 리퀸은 6시간 정도 지나면 가능하다. 터펜틴은 30-40분이면 마른다.
교수가 가르쳐준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순서는 대충 다음과 같다. 먼저 바탕색이 될 물감을 터펜틴과 섞어 캔버스에 바른 후, 마르기 전에 붓으로 그림의 형태를 잡는다. 이때 필요하면 터펜틴 섞은 물감을 더 칠하거나 붓에 터펜틴을 살짝 찍어 물감을 지워가며 그림을 고칠 수 있다.
그림의 형태를 잡아 놓은 바탕이 마르면 그 위에 리퀸을 섞어 물감을 칠하며 그림을 그려간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조금씩 빌드업해 가며 디테일은 맨 마지막에 넣는다.
2주 전, 모두들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고 작품평을 했다. 그날은 수업은 없이 3시간 동안 20여 개의 작품을 놓고 하나씩 의견을 나누었다. 나보다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중년 남성이 두 명 있는데, 그림을 매우 잘 그린다. 그날도 두 사람의 작품이 돋보였다.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다.
유화는 수채화나 아크릴화와는 달리 서둘러 그릴 수가 없다. 수채화나 아크릴화를 캠프장에서 텐트 치기라고 하면, 유화는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려야 한다. 나처럼 급한 성격도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림이나 글이나 비슷하다. 다음날 다시 보면 어제는 보지 못했던 실수도 보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학교 책가게에 마침내 유화물감이 왔다. 교수가 매니저에게 몇 번이나 독촉을 한 끝에 겨우 온 것이다. 준비물 목록에 있는 물감을 사고 나니 학교에서 준 바우처의 잔고는 바닥이 났다. 물감이 예상보다 훨씬 비쌌다. 남은 학기 준비물은 쌈짓돈으로 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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