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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클래스

유화 (2)

by 동쪽구름 2025. 3. 15.

유화반 교수 아멜리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가 교실의 싱크대를 쓰지 못해 화장실 싱크를 사용한다는 것을 지난번 수업시간에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학장에게 이야기해서 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미술 수업을 하는 아트빌딩 교실에는 한쪽 구석에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을 이곳에서 필요한 물을 떠다 쓰기도 하고, 붓이나 팔레트 등을 씻기도 한다. 싱크대 아래쪽이 막혀있어 나 같은 휠체어 장애인은 접근이 용이치 않다. 휠체어 앞부분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교실 옆 화장실 싱크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여럿이 함께 쓰는 싱크대보다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넓게 쓰는 것이 더 편하다. 

 

그녀에게 답장을 썼다. 고맙다고, 하지만 지금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고, 윗사람들은 그런 일로 자꾸 귀찮게 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때문에 그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아멜리아는 매사를 원리원칙대로 하려고 애쓰며, 나를 배려해 준다. 내가 교실의 철제 이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학교에 이야기해서 테이블용 이젤을 주문해 주었고, 매번 강의가 끝나고 그림을 그리는 스튜디오 시간이 되면 높낮이가 조절되는 테이블에 이젤을 올려 내가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준다. 

 

그녀의 메일을 받던 날, 나는 페이스북에서 5층 이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된다는 한국 건축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래서 한국의 장애인들은 2층 이상, 5층 이하의 건물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게다가 대부분 상가의 입구에는 한, 두 개의 계단이 있어 출입이 용이치 않다고 한다. 

 

주변에 한국으로 역이민 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나도 가끔 한국에 나가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꿈같은 이야기다. 

 

아멜리아에게서 또 메일이 왔다. SSD 오피스에서 싱크를 고쳐주기로 했다며 오늘 수업에 10분쯤 일찍 와서 필요한 길이를 재자고 한다.

 

다행히 차가 제시간에 와서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알고 보니 싱크대 아래 공간에는 문이 달려 있었고,  안은 비어 있었다. 문을 여니 휠체어 들어갈 공간이 확보되었다. 곧이어 SSD 오피스에서 사람이 왔다. 문을 떼면 내가 충분히 사용할  있다고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ADA(미국의 장애인법) 기준으로 싱크대의 높이는 32인치 이하라야 하는데, 교실 싱크의 높이는 33인치라며 바닥에 깔개를 놓아 높이를 조절해 주겠다고 했다. 

 

지난주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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