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학교가 개강하는 날이다. 올 겨울 가장 큰 비폭풍이 오는 날이다. 비는 어제부터 오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전에도 비가 내렸다.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결석을 할 수도 있지만, 6주 겨울 방학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셔 가고 싶어졌다.
2:30분, 차가 왔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는 학교에 도착하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업시간까지는 20여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책방에 먼저 들렀다.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다.
미술 클래스는 이것저것 필요한 재료가 많아 그 비용이 수강료보다 더 든다. 전에는 학교에서 미술용품 가게에서 기부한 기프트 카드를 주었는데, 작년부터 그것도 없어졌다. 대신 학교에서 책가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준다.
지난 화요일, 책방에 갔더니 유화 물감을 비롯해서 클래스에 필요한 준비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주문을 하겠다고 하며, 재료가 도착할 때까지 교실에 있는 물감을 쓰라고 한다.
책방에 가서 붓과 지우개 등 몇 가지를 집어 들었는데, 바우처를 관리하는 직원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아무래도 수업에 늦을 것 같아 나중에 오마고 하고 나왔다. 비는 아까보다 더 쏟아진다. 서둘러 아트 빌딩에 들어서니 갤러리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행사 끝나고 남은 것이라며 과일과 애플 사이더를 건네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비가 온 탓인지 교실에는 예상보다 적은 10여 명의 학생이 모였다. 교수는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최대한 빨리 수업을 끝내겠다고 한다. 함께 실라버스를 검토하고 재료와 준비물 등을 소개한 후 1시간 만에 수업이 끝났다. 원래 수업은 4-8시까지, 4시간이다. 남아서 교수가 챙겨주는 물감과 붓을 받아 들고 나왔다. 비는 아직도 쏟아지고 있다.
책방에 가서 아까 사려던 물건을 사고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동안 낮에만 학교에 나와 밤에는 어떤 건물이 몇 시까지 문을 여는지 알 수 없다. 40여 년 전, 밤에 학교 다닐 때는 이 시간에도 학생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비가 오는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사서에게 물어보니 도서관은 8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집에 가는 차는 8:20분에 온다. 대충 시간이 맞을 것 같다.
들고 간 태블릿으로 게임도 하고 책도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아내가 싸준 티와 빵이 있는데, 도서관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어드미니스트레이션 빌딩으로 향했다. 밖에서 보니 로비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빵과 차를 먹고 마셨다. 알고 보니 그 빌딩의 교실에서는 ESL 저녁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의 모두 알미니안이나 러시아 지역의 이민자들이다.
커뮤니티 칼리지에는 두 종류의 ESL 클래스가 있다. 하나는 정식 대학 교과과정이다. 이를 수강하려면 체류신분이 보장된 사람이라야 한다. 다른 ESL 코스는 체류 신분을 묻지 않으며 수시로 등록이 가능하다. 불법체류자에게 무상으로 영어를 가르쳐 준다. 그들이 영어를 이해해야 일을 시키기도 쉬울 것 아닌가. 트럼프는 불체자들을 추방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미국은 불체자 없이는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8:30분, 기다리던 차가 왔다. 긴 하루가 그렇게 끝이 났다.
'미술 클래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크릴화 II (5) (5) | 2024.12.18 |
---|---|
아크릴화 II (4) (2) | 2024.12.05 |
아크릴화 II (3) (7) | 2024.11.10 |
아크릴화 II (2) (5) | 2024.10.19 |
아크릴화 II (1) (2)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