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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5

아크릴화 II (5) 학기가 끝이 났다. 나이가 든 탓인지 요즘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LAVC의 미술 클래스는 초급, 중급, 고급반이 모두 한데 모여 수업을 듣는다. 기초 이론은 초급반에서 거의 다 배운다. 한 번 들어 다 배워지지 않으니 중급, 고급반도 같은 내용을 반복해 듣는다. 물론 새로운 것도 배우고, 과제는 클래스 수준에 따라 다르다.  이번 학기 우리 반에는 고급반은 없었고, 중급반에는 나를 포함 두 명이 있었다. 중급반의 마지막 학기말 과제는 캔버스가 아닌 3D 물체에 물감을 입혀 원형과는 다른 모습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수가 과거 학생들이 제출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돌멩이에 뱀이나 생쥐를 그리거나 바나나를 오이를 바꾸어 놓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빈병에 열대어와 수초를 그려 어항을 만들기로 했다. 이.. 2024. 12. 18.
아크릴화 II (4) 세 번째 그림 과제는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윌리 넬슨이 부른 ‘Angel Flying Too Close to the Ground’를 선택했다.  천사의 도시인 LA에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담장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놓은 벽화가 무수히 많다. 대개는 천사 없이 날개만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가운데 서면 날개 달린 천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은 보통 2주에 걸쳐 마치게 되는데, 이번에는 추수감사절에 수업이 없어, 3주가 주어졌다. 첫 주에 그림을 거의 끝내고 학교에 가지고 가 교수에게 보여주니 날개를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집에서 아내가 보고 고치라고 했던 것이다. 고치고 싶긴 한데 고칠 엄두도 용기도 없다고 하니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고치자고 한다.. 2024. 12. 5.
아크릴화 II (3)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를 배우면 둘과 셋을 스스로 깨우친다고 하지만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계속하다 보면 깨달음이 오는 때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아내가 대단한 작가(artist)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10여 년 전, 5-6년 동안 LAVC에서 거의 모든 미술 실기 공부를 했다. 그림 그리기 (drawing/life drawing), 수채화, 아크릴, 유화 등을 기초반부터 상급반까지 들었고,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수업을 이어가는 independent 클래스도 들었다. 그 후 조카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되며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붓을 놓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학교 수업을 들어보니 미술 클래스에서 한 학기에 실제로 그리는 그림의 숫자는 3-4개에 불과하다. 화가로 인정.. 2024. 11. 10.
아크릴화 I (6) 학기가 끝이 났다. 마지막 과제물은 기억 속 한 장면, 또는 물건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무, 유리, 철판 등, 캔버스가 아닌 표면에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 상자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큰 물건을 살 때 따라온 골판지를 골라 주었다. 두툼한 골판지였는데, 판지 사이의 물결 모양 골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멋진 효과가 생겨났다.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추상화는 대상을 잘 관찰하고 이미지를 잘라 작가 나름 해석을 해서 그리는 그림이다. 나는 세 가지 스케치를 해서 교수에서 보여 주었다.  내가 선택한 세 가지 소재는 (1) 역마차와 말 – 내 나이 6-7살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아직 소아마비를 고쳐보겠다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때다. 침과 뜸 치료를 받고 있었.. 2024.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