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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하루키는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발표하고 10년쯤 지났을 무렵, 다시 잡지 ‘앙앙 anan’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표제를 달고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오하이 아유미’의 동판화와 함께 연재순으로 엮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출간했다. 몇 가지 첫 번째 책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글의 맛이 조금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유미의 그림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1편에 실렸던 판화에 비해 이번 책에 실린 그림들은 선이 매우 깔끔하고(테그닉이 늘었나?), 세련되어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하루키적 발상인지 (어쩌면 편집자의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겠다) 글 끝에는 에세이의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문장이 하나씩 적혀있다. “지바 현에서 ‘굿럭’이라는 .. 2026. 8. 15.
4와 5 사이 아, 또 졌다. 어제까지 5단이었는데, 이제 4단이다. 바둑 이야기다. 일과처럼 매일 바둑을 둔다. 누구를 만나서 두는 것도 아니고, 굳이 기원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아이패드나 전화기를 열어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이름 모를 누군가와 바둑을 둔다. 인터넷 바둑은 상대방을 볼 수는 없지만, 돌을 보면 그 사람의 기풍이나 기분을 알 수 있다. 몸을 사리며 틈을 엿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변칙수를 꺼내드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평정심을 가지고 내 바둑을 두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크게 이기고 있는 바둑을 잘 지키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불리해진 상대방이 마구 도발하기 때문이다. 이때 잘못 말려들면 자칫 역전패다. 다소 불리한 바둑도 포기하지 않고 한집씩 내 집을 키우고 상대방의 집을 부수어나가.. 2026. 8. 14.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하루키가 주간잡지 ‘앙앙 anan’에 매주 한 편씩 일 년 동안 연재한 50편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그는 이 잡지를 읽는 독자들이 20세 전후의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키는 스키야키를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오늘 저녁은 스키야키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뻤다고 한다. 그런데 인생의 어느 시점 이후로 주위에서 스키야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에게 물어도 ‘좋아하지 않는데요’라는 냉담한 답이 돌아온다. 그의 아내조차도 스키야키는 5년에 한 번 정도 먹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스키야키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어린 시절 가끔씩 집에서 스키야키를 먹곤 했다. 네모난 전기 프라이 팬에 곤약과 두부, 양파와 양배추 등의 야채와 .. 2026. 8. 12.
도넛 최근에 산 하루키의 산문집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읽다가 ‘도넛’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그는 단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도넛만은 예외라고 한다. 미국 보스턴 교외에 있는 ‘타후츠’ 대학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아침에 던킨도넛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홈컷’ 도넛을 두 개를 사며 가지고 간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달라고 해서 학교에 가곤 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도 도넛을 좋아하며 내게도 이런저런 도넛에 얽힌 기억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60여 년 전, 한때 어머니가 요리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만든 도넛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도넛하면 연상되는, 가운데 구멍이 난 도넛을 먹었던 기억은 별로 없고, 도넛 하면 제과점에서 파는 안에는 팥을 넣고 튀겨 겉에.. 2026. 8. 9.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LA시립 도서관에 가면 한국책 코너가 있다. 소설, 에세이, 인문학 서적 등, 꽤 많다. 아쉬운 점은 업데이트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간 서적,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가 LA 한인타운에 생긴 알라딘 중고책방을 통해 한국에서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액 이상을 구입하고 4-6주 배편을 이용하면 운송비를 할인받아 책을 살 수 있었다. 중고책 치고는 가격이 다소 비싸기는 했지만, 중고책이라고 해도 새 책과 다름없었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한국책을 미국에서 받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좋던지. K타운 가게에 책이 들어올 때 함께 보내, 미국에서 배송했던 것 같다. 그 후 코로나 팬데믹 때는 배편을 이용한 배송은 없어져 다소 비싼 수수료를 내고 DHL을 통해 .. 2026. 7. 29.
65. A Call at Dawn Early in the morning, the phone rang. A call that comes in the middle of the night or at the break of dawn is usually bad news. When Semi broke her arm at a church retreat, the phone rang early in the morning; when my mother fell in the living room, the call came at dawn, too. Taking the call, my wife’s face crumpled, and she soon burst into tears. I wondered if something had happened to my fath.. 2026.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