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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나무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돌배나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6년 전의 일이다. 지붕공사를 하며 지붕과 처마에 가지를 드리우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막상 나무들을 제거하고 나니 빈 공간이 허전하고 그늘도 사라져 나무를 한그루 심기로 했다. 나무를 사려고 하니 생각보다 비쌌다. 어린 나무를 심어 몇 년 키우면 되지 싶어 홈디포에서 세일하는 나무를 사 왔다. 교우 S 씨 부부의 도움을 받아 심고, 식수 기념으로 버팀목에 사인까지 했다.  제법 큰 키의 나무를 싸게 판 이유가 있었다. 키는 사람만 한데 줄기는 가늘어 바람이 불면 심하게 휘청 거리는 것이었다. 몇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 앞마당 공사를 하며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콘크리트를 깔게 되었다. 나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놈 .. 2025. 2. 19.
유화 (1) 목요일, 학교가 개강하는 날이다. 올 겨울 가장 큰 비폭풍이 오는 날이다. 비는 어제부터 오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전에도 비가 내렸다.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결석을 할 수도 있지만, 6주 겨울 방학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셔 가고 싶어졌다.  2:30분, 차가 왔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는 학교에 도착하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업시간까지는 20여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책방에 먼저 들렀다.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다.  미술 클래스는 이것저것 필요한 재료가 많아 그 비용이 수강료보다 더 든다. 전에는 학교에서 미술용품 가게에서 기부한 기프트 카드를 주었는데, 작년부터 그것도 없어졌다. 대신 학교에서 책가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준다.  지난 화요일, 책방에 갔더니 유화 물감을 .. 2025. 2. 15.
맥다방 점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일이면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주일이면 교우들과 맥도널드 (맥다방)에서 점심을 먹는다. 맥다방에서 점심을 먹게 된 사연을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가 되는데,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다니는 공동체는 학교 성당을 빌려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식당이나 부엌이 없다. 일 년에 몇 차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카페테리아 사용허가를 받아 캐터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한동안 구역 식구들이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 와 미사 후 주자창 한쪽에서 나누다가 어느 날 맥다방으로 진출했다.  성당 근처 맥다방이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자 한 번 가보자 해서 간 것이다. 아늑한 공간에 앉아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시니어 커피까지 마시며 한참을 놀다 나왔다. 다음주가 되니.. 2025. 1. 31.
원더풀 라이프 책에는 “무력의 왕,” “한낮의 달,” “불초의 자식,” “가면의 사랑,” 4개의 이야기가 세 번에 걸쳐 전개되며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엔딩 크레디트”으로 끝이 난다. 무력의 왕 – 지진으로 중상을 입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아내를 돌보는 남자의 이야기다. 한낮의 달 –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아내를 설득하여 일 년 동안 노력하지만 결국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남편 가즈시는 아이는 포기하고 아내와 오손도손 살아갈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으려 한다. 설계한 집에 아이 방이 없는 것을 보고 아내는 입양을 할 테니 아이 방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불초의 자식 – 유부남 직장상사인 요지와 불륜을 맺던 이와코. 요지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며 두 사람 사이는 멀어지는데, 그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임신을 하게 .. 2025. 1. 22.
아저씨의 칠순 잔치 동갑내기 아저씨의 칠순 잔치에 다녀왔다. 칠순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는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환갑은 만 나이 60세에 하는 것이고, 칠순이나 팔순은 한국식 나이 70과 80이라고 한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며 칠순을 만 나이로 따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내가 기억하는 큰 잔치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환갑잔치다. 외할아버지 때는 이틀 전부터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해 크게 상을 차려 잔을 올렸다. 자식들이 잔을 올릴 때 중년의 여인이 곁에서 소리를 했고,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다.  어머니의 환갑잔치는 타운의 중식당에서 했는데, 꽤 많은 손님이 왔었다. 그때도 상을 차려 잔을 올렸는데, 할아버지 때와는 달리 상에 오른 한과가 장식용이었다. 나와 형제들이 어머님 은혜와 생일 축하 노래를 .. 2025. 1. 16.
콘클라베 ‘콘클라베’는 새 교황을 뽑는 과정을 다루고는 있지만 종교영화는 아니다. 작가 ‘로버트 해리스’가 쓴 동명의 미스터리 소설이 원작이다.  교황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영국 추기경인 ‘로렌스’(레이프 파인스)는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는 진보적인 미국 추기경 ‘알도 벨리니,’ 보수적 사회주의자인 나이지리아 출신 ‘조슈아 아데미,’ 중도인 캐나다의 ‘조셉 트렘블리,’ 그리고 전통주의자며 보수파인 이탈리아의 ‘테데스코’ 등 4명이다. 로렌스도 추기경이니 만큼 교황이 될 수 있지만, 그는 교황선출 과정을 진행하는 행정가로 남기를 원한다.  로렌스는 교황을 곁에서 보좌하던 신부로부터 교황이 사망하던 밤 트렘블리에게 사직을 요구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2025.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