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과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다.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알고 있는 이야기, 또는 음악이나 시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하는 일이다. 수업시간에 과제에 대한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두 가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하나는 ‘새옹지마’였고, 다른 하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영시 ‘가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싶은 그림은 내 인생 좌우명에 가까운 새옹지마였지만, 막상 스케치를 하려 하니 말은 대충 그리겠는데, 노인과 다리가 부러진 아들을 그리는 일이 난감했다. 결국 차선책으로 가지 않은 길을 그리기로 했다.
처음 생각은 이제껏 그려온 내 스타일의 그림이 (밝은 색상에 디테일이 많이 들어간) 아닌 고흐 스타일로 그려볼 생각이었다. 강한 톤의 물감을 듬뿍 찍어 발라 질감을 살려 보리라. 그런데 막상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바르기 시작하니 어느새 내 버릇대로 가고 말았다. 이건 내 성격 탓이다. 까짓 거 한번 질러보자 하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물감을 칠해야 하는데,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릴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그림인 것 같다. 교수는 많이 늘었다고 하고 전에 그린 것과 비교해 보면 내가 보아도 좋아진 것 같은데, 끝내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힘든 것 중 하나가 그림자를 만드는 일이다. 빛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다양한 톤과 모양의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사진이나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빛도 그림자도 내가 만들어 내야 했다. 한 가지 꾀를 내서 그림에 비닐랩을 씌워 그 위에 물감을 칠하며 연습을 하기로 했다. 결국 학교에 가서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림자의 각도와 모양을 만들어 냈다.
이 그림에는 나만 아는 비밀이 있다. 원래 내가 그리려던 사람은 머리카락이 뒤통수에만 조금 남아 있는 나이 든 대머리였다. 그런데 바닥 길의 색상이 피부색에 가까워 대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머리카락을 다 그려 넣었다. 왼손도 보이지 않아 빨강 장갑을 그려 넣었다.
‘가지 않은 길’을 오랜만에 찾아 읽었다. 나이가 드니 자주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그때 그 길로 갔더라면… 결국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이민정, 장원 역)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여서 두 길을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서서 한 길이 덤불 사이로 굽어지는 곳까지
멀리, 저 멀리까지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길로 나아갔습니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더 나은 길처럼 보였습니다.
풀이 무성하고 닳지 않은 길이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두 길은 똑같이 닳을 것입니다.
까맣게 디딘 자국 하나 없는 낙엽 아래로
두 길은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아, 다른 길은 후일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길이란 길과 이어져 있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죠.
까마득한 예전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로 나아갔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