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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모스크바의 신사

by 동쪽구름 2023. 5. 26.

작가 ‘에이모 토올스’의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한글 번역본의 길이가 717페이지에 달하는 매우 긴 장편소설이다. 아마도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본 책 중에 가장 분량이 긴 책이 아니었나 싶다.

 

2016년 발표된 이 소설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2017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꼽았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티셀러 목록에 50주 이상 이름을 올렸다. 

 

1922년, 구시대의 귀족인 33 살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평생 감금되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크고 편안한 객실에 장기투숙하고 있던 그는 달랑 옷가지와 몇 가지 물건만 챙겨 다락방으로 쫓겨난다. 하지만 그는 신사로서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고 새 삶에 적응하여 호텔에서 살아간다. 감금된 삶 속에서 만난 꼬마 숙녀 ‘니나’ 와의 우정, 여배우와의 비밀스러운 연애, 호텔 종업원들과의 다양한 인간관계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훗날 성인이 된 니나가 홀연히 나타나 맡기고 간 ‘소피야’를 자신의 딸인양 애지중지 키우게 된다. 러시아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격변의 시간을 지나가지만, 그는 폭넓은 교양 지식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어느 날 피아니스트가 된 소피야가 공연을 하기 위해 파리로 가게 되자, 그는 호텔에서의 대탈출을 계획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매우 독특한 시간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32년의 세월을 담고 있다. 1922년 6월 21일을 시작으로 장이 바뀔 때마다 시간이 2배 정도의 속도로 흘러간다. 로스토프 백작의 연금이 시작되는 6월 21일, 그 하루 뒤, 이틀 뒤, 5일, 10일, 3주, 6주, 3개월, 6개월, 1년, 2년, 4년, 8년, 16년 뒤의 하루가 등장한다. 1938년부터는 그 빠르기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장이 바뀌면 8년, 4년, 2년, 1년, 6개월, 3개월, 6주, 3주, 10일, 5일, 이틀, 그리고 1954년 6월 21일로 끝이 난다.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나 한국의 ‘국제시장’처럼 구소련의 역사적인 일들이 개인의 삶에 녹여져 등장한다. 

 

로스토프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대공은 그에게 “역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 준다. 그 말대로 로스토프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삶의 목적을 찾아 잘 적응해 나간다.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그를 응원하게 된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으며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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