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그럴 때 있으시죠

by 동쪽구름 2023. 5. 28.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 그 사람을 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김제동’을 싫어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 정도였다고 해두자.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말장난이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며, 그 후 연이은 정치적인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쓴 에세이 집 ‘그럴 때 있으시죠’를 읽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는 말만큼이나 글도 재미있게 잘 쓴다. 그리고 글에는 나름 그의 세상사는 요령과 철학이 들어있다. 
 
위로 누이가 다섯, 연달아 딸만 5명을 낳고 또 아이를 낳게 되자 아버지는 막내를 낳는 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귀한 아들을 두고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홀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게 된다. 형편이 어려워 누이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 역시 어린 나이에 가난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안다. 
 
김제동을 정치적으로 만든 것은 한국의 언론과 정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는 여론과 상관없이 국민을 섬기며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소신껏 싫은 소리도 하고 힘든 결정도 해야 한다. 하지만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선거를 마주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늘 여론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순박한 마음으로 (또는 뭣도 모르고) 정치를 하려던 사람들은 늘 정치 9단의 능구렁이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만다. ‘정몽준’이나 ‘안철수’ 같은 이들이 늘 뒤통수만 맞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솔직한 생각을 말로 뱉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자리에 가서 사회도 보고 이야기도 했던 김제동도 정치 9단 능구렁이들에게는 좋은 잿밥이 됐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보적인 생각과 보수적인 가치관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자리에 따라 진보적인 생각을 말할 수도 있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보일 수도 있다. 김제동도 그랬을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판과 언론은 자기들 편의에 따라 이런저런 해석과 의미를 내놓았고, 결국 그를 정치적인 연예인으로 만들었지 싶다. 
 
어쩌면 김제동은 정말 정치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정치판은 누구나 정치인을 만들 수 있다. 윤석렬 검사장을 하루아침에 대통령으로 만든 정치판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가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연예인 김제동으로 남아 우리에게 계속 웃음과 눈물을 선물하기를 바란다. 
 
책에는 꽤 많은 분량의 정치적인 글들이 들어 있다. 아마도 자신을 진보 좌파로 보는 여론을 의식해서 이에 대한 설명/해명을 적어 놓은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생각과 사람 사는 이야기로 채워 놓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소개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인상 깊었던 대목 하나만 적어 본다. 그가 매우 억울한 일을 당한 직후다. 
 
“이럴 때 남자한테 전화를 하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남자들은 어떤 얘기를 해도 결론이 똑같거든요. 
‘술 먹을래?’
이럴 때는 여자분에게 전화를 해야 하더라고요.” (256 페이지)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빵 굽는 타자기  (1) 2023.06.07
파리의 아파트  (2) 2023.06.02
모스크바의 신사  (1) 2023.05.26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1) 2023.05.09
붉은 손가락  (1)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