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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적의 화장법

by 동쪽구름 2023. 8. 16.

기술적인 문제로 비행기 출발이 늦어져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한 사내가 말을 건다. 앙귀스트는 책을 읽으려 하는데 사내는 계속 그에게 말을 건다. 자신은 네덜란드 사람이며, 이름은 ‘텍스토르 텍셀’이라고 한다.

 

결국 앙귀스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방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여덟 살 때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체육을 잘하던 급우 ‘프랑크’를 질투하여 그를 죽여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 끝에 건강하던 아이가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 살던 그는 매일 세 마리의 고양이에게 통조림 생선에 밥을 섞어 먹이로 주어야 했다. 어느 날 그 밥을 한 움큼 집어 먹은 후, 고양이 밥을 계속 뺏어 먹게 되었다. 

 

스무 살 무렵에는 파리의 공동묘지에서 만난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납치하여 묘지가 문을 닫은 후 그곳에서 그녀를 강간한다. 도망치려는 그녀를 무덤 사이로 쫓아 낙엽 위에서 그녀를 가졌노라고 말한다. 자신은 동정이었으며, 그녀는 아니었다고 한다. 

 

10년 후, 우연히 길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 그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잔인하게 칼로 살해했다. 완전 범죄에 성공한 후, 또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이 바로 그녀가 살해된 날이다. 

 

이야기를 듣던 앙귀스트는 텍셀이 20년 전에 강간하고, 10년 전에 잔인하게 살해한 여인이 바로 자신의 아내였던 ‘이자벨’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곤 경악한다. 텍셀은 이 모든 범죄를 앙귀스트에게 고백하며 그에게 자신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죽여 달라고 한다. 

 

앙귀스트는 공항 경찰에게 텍셀을 체포해 달라고 하지만, 경찰은 도리어 그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고, 다시 이런 장난을 치지 말라고 경고하곤 가버린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 소리치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제사 텍셀은 앙귀스트에게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은 앙귀스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대부분 대화로 진행되며, 마지막 부분에 예상 가능한 반전으로 소설을 마무리했다. 

 

나는 프랑스 작가의 책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지만, 영미 소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정서와 감성도 다르다는 의미다. 이 책도 내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의 현대소설은 영미권의 영향을 받아 문장이나 흐름이 영미 번역 소설에 가까운 편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사람은 누구나 하나 이상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내 안에는 나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내가 있다. 내 안의 내가 하는 생각은 남들에게 공개하기 곤란한 것들도 있다.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면 그만이지만, 행동으로 옮겨지면 사람들은 평소 그 사람답지 않다는 말을 하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적의 화장법’은 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135페이지로 비교적 분량이 적은 소설이다. 희곡같이 읽힌다. 한국에서도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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