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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공터에서

by 동쪽구름 2023. 8. 15.

작가 ‘김훈’의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가장인 ‘마동수’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까지 1920년대에서 1980년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 일대를 떠돌았던 마동수의 파란만장한 삶, 해방 이후 혼란과 한국 전쟁, 군부 독재 시절과 월남전, 대통령의 죽음 등 그 시대의 다양한 사건이 등장한다.

 

작가 김훈의 아버지는 마동수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으며, 우리 아버지도 같은 세대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버지도 만주를 떠 돌다 일본군대에 들어가 남방의 어느 섬에서 해방을 맞았으며, 국군 장교로 북진해 고향 땅을 밟았다가 중공군에 밀려 부모 형제를 버려둔 채 남쪽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마동수와 그의 아내 '이도순'처럼 요양원에서 쓸쓸히 홀로 돌아가셨다. 

 

이야기는 마동수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상병 계급장을 달고 동부전선 GOP에서 근무하던 차남 마차세는 휴가를 나왔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되어 혼자 장례를 치른다. 형 마장세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현지에서 제대한 후 괌으로 갔고, 이제는 동남아에서 사업을 한다. 

 

요양원에 있는 이도순은 흥남 철수 때 남편과 어린 딸과 헤어져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나왔다. 그곳에서 피 묻은 군복 빠는 일을 하다가 마동수를 만나 두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을 낳은 후, 마동수는 늘 밖으로 떠 돌았다. 

 

‘박상희’와 결혼한 마차세는 주간 경제 잡지 기자로 3개월 근무하다가 언론 통폐합으로 경제 잡지사가 다른 잡지사와 합치며 실직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오토바이 택배를 시작한다. 

 

국립묘지에 묻힌 월남전 전우의 무덤을 찾았던 마장세는 전우의 형인 ‘김오팔’을 만난다. 폐철을 매입, 철을 재가공해 대기업에 넘기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그의 명함을 받아 넣는다. 

 

마차세의 동창이며 전우였던 ‘오장춘’은 현역병 시절 군용 연료를 횡령한 범죄 사건에 연루되지만 군복을 벗은 탓에 처벌을 면한다. 오장춘은 김오팔을 통해 마장세와 선이 닿고, 마장세와 거래를 하게 된 오장춘은 마차세가 그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차세가 변변한 직장 없이 지낸다는 소식을 들은 오장춘은 마장세에게 동생을 보내라고 하고, 마차세는 그의 회사에 들어간다. 

 

미크로네시아 지방정부로부터 갯벌에 버려진 폐차를 치워주기로 하고 계약을 맺은 마장세는 쉽게 치울 수 있는 고철만 수집하고 뻘에 빠진 것들은 바다로 밀어 내 버린다. 결국 꼬리가 잡혀 한국으로 추방되어 실형을 살게 되고, 그의 사업 파트너였던 오장춘은 마약 밀수 혐의를 받고 잠적했다가 자살한다. 

 

실직을 하게 된 마차세는 다시 오토바이 배송을 시작한다. 

 

김훈의 작품 속 인물 중에 영웅은 없다. 특별한 악인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역사적 사건에 휩쓸린다. 그런 사건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특별히 슬픈 일이 없어도 슬프고 가슴이 아리다. 

 

작품 속 인물 중에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가 들어 있고, 어떤 이는 나 같고 또 다른 이는 내 이웃 같다. 그래서 더욱 그의 책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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