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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by 동쪽구름 2023. 8. 9.

주인공인 대학생 ‘나’는 1991년 ‘5월 투쟁’이 끝난 후 방북하는 학생 예비대표가 되어 베를린으로 간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하고 얼마 후 학생운동 지도부가 붕괴되고 교체되며 나는 잊혀지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방북을 하게 될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 아니면 독일에 남아야 하는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는 노트를 사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은 동료의 이름을 쓰며 제3세계 망명자들의 후원자가 된 ‘헬무트 베르크,’ 일용직 노동자에서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다시 태어난 ‘이길용,’ 모범적인 고등학생이었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폭행을 경험하고 자살을 하게 되는 나의 애인 ‘정민’의 삼촌 등이 등장한다. 

 

무주 산골에 살면서도 세상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정민의 할머니,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든다는 황당한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또는 끝이 닿아 연결되며 이어진다. 

 

군부독재 시절, 사람들은 공포의 상징이었던 남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고문 끝에 무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내뱉기도 했다. 고문과 회유에 넘어가 프락치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1989년에는 여대생 ‘임수경’이 독일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가 판문점을 통해 돌아온 일도 있었다. 이런 사건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책에 등장한다. 

 

2005년 겨울부터 2007년 봄까지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 이야기의 흐름을 좇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며 전후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들도 있지만) 잘 이어지지 않는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은 독자를 혼란으로 이끌게 된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384 페이지) 

 

김연수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소설가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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