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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키친

by 동쪽구름 2023. 8. 20.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작품집인 ‘키친’에는 ‘키친,’ ‘만월,’ 그리고 ‘달빛 그림자,’ 세 작품이 들어 있다. 이 중 만월은 키친의 후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실은 두 개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를 잃은 ‘미카게’에게 할머니가 생전에 단골로 가던 꽃가게의 청년 ‘유이치’가 다가와 자기 집에 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미카케는 유이치가 어머니 ‘에리코’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에리코는 원래 유이치의 아버지였다. 아내를 잃고 난 후 여자가 되어 게이 바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미카게는 유이치네 부엌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며 차츰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에서 회복한다. 
 
키친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만월은 에리코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정신 나간 남자가 그녀를 좇아다니다가 급기야 살해를 한 것이다. 
 
키친에서는 유이치와 에리코가 할머니를 잃은 미카게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면, 만월에서는 어머니를 잃은 유이치의 상실감을 미카게가 위로해 준다. 
 
작가의 졸업작품이라는 달빛 그림자에서는 애인 ‘히토시’를 교통사고로 잃은 ‘사츠키’가 주인공이다. 히토시에게는 ‘히라기’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 역시 애인이었던 ‘유미코’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히토시가 동생을 찾아왔던 유미코를 나가는 길에 역에 데려다주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히토시를 잃은 사츠키, 형과 애인을 한꺼번에 잃은 히라기는 상실감에 젖어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사츠키는 신비한 여인 ‘우라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상징하는 다리 위에서 히토시의 모습을 보고 상실감으로부터 회복을 시작한다. 
 
책에 실린 세 작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적인 테마가 흐르고 있다. 상실감은 치유의 한 과정이며,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도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담이지만, 주 공무원 시절 남자였다가 여자가 된 동료가 있었다. ‘래리’라는 중년남자가 여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래리에서 ‘리사’가 된 그녀는 성전환 수술까지 마치고 완전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자녀들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물론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그녀를 그냥 ‘리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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