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by 동쪽구름 2023. 8. 29.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하루키가 1981-1983년 사이 작은 잡지에 연재했던 18편의 단편을 엮은 작품집이다. ‘도서관 기담’을 제외하고는 모두 400자 원고지 8-14매 정도의 짧은 소설들이다. 훗날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장편 소설이 된 도서관 기담은 6회에 걸쳐 연재를 했다고 한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는 하루키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의 장편 ‘1Q84’의 시작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1981년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에, 하라주쿠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난다. 그 여자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이미 서른에 가까울 정도다. 그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걷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얘기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스쳐 지나고 말았다. 정말 하루키답지 않나? 
 
흡혈귀가 택시기사가 된 이야기 '택시를 탄 흡혈귀,’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를 그린 ‘5월의 해안선,’ 두 철길이 교차하는 삼각형 끝 쪽에 위치한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부부가 등장하는 ‘치즈케이크 같은 모양을 한 나의 가난’ 등이 들어있다. 
 
하루키는 확실한 그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이야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과 묘사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를 꺼내 대충 섞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리사와 같다고나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상상은 우리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가끔은 남이 알면 부끄럽고 어색할만한 엉뚱한 생각을 한다.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고, 어찌해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인연을 생각하고. 그리고는 누가 알아차릴까 봐 얼른 그런 생각들을 지워 버린다. 하루키는 그 생각을 계속 가지고 키운다. 이곳도 들추어 보고, 저곳도 쑤셔 보고. 그러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이 살아나 생각에 살이 붙어 이야기가 된다. (뭐 이런 식이 아닐까 싶다.) 
 
책에 실린 작품들이다. 제목만 보아도 하루키적이 아닌가. 
 
캥거루 날씨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졸립다
 택시를 탄 흡혈귀
 그녀의 거리와 그녀의 면양
 강치축제
 거울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버트 바카락을 좋아하세요?
 5월의 해안선
 몰락한 왕국
 서른두 살의 데이 트리퍼
 뾰족구이의 성쇠
 치즈 케이크 같은 모양을 한 나의 가난
 스파게티의 해에
 논병아리
 사우스베이 스트럿
 -두비 브라더스의 <사우스베이 스트럿>을 위한 BGM
 도서관 기담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요일 살인 클럽  (2) 2023.09.10
여자아이 기억  (3) 2023.09.08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4) 2023.08.24
키친  (3) 2023.08.20
적의 화장법  (4) 2023.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