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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당신 얼굴 앞에서

by 동쪽구름 2023. 9. 17.

‘홍상수’ 영화의 매력이라면, 영화가 단편소설 같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와 내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애처롭고 애잔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질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이기도 하다.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왕년의 여배우 ‘상옥’(이혜영)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상옥이 여동생 ‘정옥’(조윤희)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메모를 끼적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잠에서 깬 정옥이 언니를 데리고 맛있는 토스트를 파는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매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으며, 정옥이 미국에서 주류 판매점을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날 오후, 상옥은 만나자고 몇 번 전화를 해 온 영화감독 ‘재원’(권해효)을 영업을 하지 않는 술집 '소설'에서 만난다. 재원은 그녀에게 영화출연을 제안한다. 언제 찍을 수 있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려면 1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자, 그녀는 자신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의사는 5-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 고통은 없고, 병원에는 가지 않을 것이며 그냥 하던 일 하다가 죽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재원은 그럼 단편이라도 하나 찍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카메라로 찍고 그 자리에서 편집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다음날 강원도 양양으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다. 

 

상옥은 재원에게 자기와 자고 싶으냐고 묻고, 재원이 그렇다고 답하자, 상옥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밖에 나가니 비가 내리고, 두 사람은 잠시 담배를 피우다가 작은 우산을 쓰고 다정하게 어깨를 맞댄 채 골목을 빠져나간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상옥 옆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눈을 뜬 상옥은 재원이 남긴 메시지를 듣고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는다. 

 

내 개인적으로는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문학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죽음을 대하는 단호한 상옥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홍상수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그의 연인인 ‘김민희’가 제작실장을 맡았다고 한다. 배우니까 당연히 역할에 맞게 분장도 하고 연기를 했겠지만, 이혜영의 연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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