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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아르헨티나, 1985년

by 동쪽구름 2023. 7. 21.

영화 ‘아르헨티나, 1985년’의 배경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장악했던 시절 벌어진 민간인들에 대한 탄압이다. 이들은 약 3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 고문, 살해했다.

 

이 재판의 검사로 지목된 ‘훌리오 스트라세라’(리카르도 다린)는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피터 란자니)와 함께 이들이 벌인 만행을 조사해 이들의 유죄를 이끌어 낸다. 

 

이런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사연을 플래시백으로 재구성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얼마나 잔혹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런 플래시백은 등장하지 않는다. 증인들의 진술로 그 상황을 설명한다. 

 

증거를 수집하고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훌리오와 그의 가족, 루이스는 수차례 협박을 받지만, 이 역시 공포적이지 않다. 영화에는 유머스러운 요소들이 계속 등장한다. 살해위협을 받는 가족들은 두려움 대신 경쾌함으로 이런 위협을 받아들인다. 훌리오의 아내는 종일 협박 전화를 받은 후 남편에게 지겨워 죽겠노라고 말한다. 그녀의 어조에 두려움의 흔적은 없다. 이 영화에 흐르고 있는 전반적인 분위기다. 

 

시기적으로는 10년 정도 빠르긴 하지만, 60-70년대 한국도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기도 했다. 아버지의 외삼촌도 길에서 죽음을 맞았는데, 내게는 6촌 동생인 그분의 손자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독재정권의 손에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집이 벽제에서 갈빗집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김대중씨와 그 일행이 갈빗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갔다. 주인이 해병대 대령 출신이라는 것을 안 김대중씨가 식사 후 잠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며칠 후, 까만 차를 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김대중씨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꼬치꼬치 묻고 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이영화를 보며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 영화라면 플래시백으로 협박과 회유, 납치와 고문, 살해 등을 보여 주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증인의 진술이라는 말의 힘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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