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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말하는 법이다 주일미사를 시작하며 바치는 고백 기도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생각은 말로, 말은 곧 우리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목적이 있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들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조금씩 커지고 무거워져 어느 순간 마음으로 뚝 떨어진다. 일단 마음에 들어온 생각은 언젠가는 말이 되어 나가고, 그 말은 결국 행동으로 이어진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고, 어떤 글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제는 글뿐 아니라 말도 쉽게 지울 수 없다. 철없던 시절에 소셜 네트워크에 남겨 놓았던 글에 발목을 잡히거나, 누군가와 비밀스럽게 나누었던 말이 공개되어 곤란을 겪는 일들을 보게.. 2020. 6. 21.
문학의 숲을 거닐다 나는 장영희 교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며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잘 아는 사람같이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살며 느낀 감성이 그녀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와 나는 상당히 다른 배경 속에서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문학자였으며, 그녀는 버젓이 대학을 마치고 외국 유학을 다녀와 대학교수가 되었고, 글로 방송으로 잘 알려진 영문학자다. 공통점이라면 그녀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며(그녀가 3년 연상이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나와 달리 그녀는 목발을 집고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 척 살았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고.. 2020. 6. 21.
홍상수의 영화 홍상수는 한국에서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감독도 아니며,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다. 도리어 그는 여배우와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 감독, 이혼에도 실패한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작은 예산으로 꾸준히 자기 스타일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름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다. 그를 잘 모르니 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처지는 아니다. 그의 영화에는 비윤리적이며 비겁하고 지질한 인물이나 (주로 남자 주인공), 주저 없이 불륜에 몸을 던지는 인물들이 (여성인 경우가 많다)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 (아무개가 그랬다더라, 누구와 누구가 그런 사이라더라 등), 누구나 한.. 2020. 6. 20.
커피 한 잔 난 커피를 좋아한다. 내가 처음으로 원두커피의 맛을 본 것은 70년대 중반의 일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인이 된 나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데 나만 자꾸 처지는 것 같아 하루는 서울에 있는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백인 카운슬러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용산 미 8군의 교육센터로 연결을 해 주었다. 그 후 미국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기 위하여 교육센터 안의 도서관으로 시험공부를 하러 다녔다. 교육센터에는 밑에 커피를 따를 수 있는 꼭지가 달린 커다란 철제 원형통에 늘 뜨거운 커피가 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며 가며 커피를 받아 마셨고 나도 도서관 직원이 권하여 그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인스턴트 커피와는 맛도 향.. 2020.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