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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다. 코로나 탓에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아 몇 달째 종이책은 빌릴 수 없다. 전자책을 빌려 킨들로 읽었다. 춤 좀 추지 그래? – 살던 집을 잃게 된 사내가 세간살이를 모두 집 앞에 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거라지 세일로 생각하고 찾아온 젊은 커플은 헐값에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 그가 권하는 술을 마시며 그가 틀어준 레코드 판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뷰파인더 – 팔 없는 사내가 여자 혼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집을 사진 찍어 주인에게 파는 길거리 사진사다. 여자는 지붕에 올라 사진을 찍기로 한다. 지붕에 오르니 동네 아이들이 던져 놓은.. 2020. 6. 27.
대화가 필요해 어떤 부부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음 출구에 휴게소가 있다는 안내판이 나오자,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요?” 잠시 생각을 하던 남편이, “아니, 생각이 없는데.” 하고는 출구를 지나쳐 계속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차 안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한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소?” 아내가 대답했다. “내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않고 휴게소를 지나왔잖아요.” 어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남편의 입장인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이고, 무엇이 갖고 싶으면 사달라면 될 것을, 아리송한 태도로 남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 2020. 6. 27.
달콤한 유혹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쯤의 나는 죽음을 매우 무서워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연과도 끝이 나며,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도리어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공유할 친구와 친척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하셨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다섯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주가 되었다. 그동안 불치병의 고통 중.. 2020. 6. 26.
삼팔선의 봄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삼팔선의 봄’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6월이 되면 ‘가요무대’에 꼭 한 번씩 등장하는 노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세차장에서 차를 세차하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가요무대’에서는 설운도가, 방송에서는 나훈아가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이름 없는 노병이 부른 버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여 년 전, 타운의 중식당 ‘용궁’에서 어머니 환갑잔치를 해 드리던 날의 일이다. 가족들의 순서가 끝나고 가라오케 타임으로 넘어갈 즈음 헌팅캡을 삐딱하게 쓴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 2020. 6. 26.
너는 천당이 있다고 믿느냐? 수년째 전립선 암을 앓고 계신 아버지에게서 최근에는 상당히 진전된 간암이 발견되었다.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찍었던 CT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벌써 5 파운드나 살이 빠지셨다. 어제 아침 병원에 모시고 가는 길에 생긴 일이다. 운전하는 내게 아버지가 물으셨다."너는 사람이 죽으면 천당이 있다고 믿느냐?" 생각지도 않던 질문인지라 궁색하게 "잘 모르겠네요. 보고 왔다는 사람이 없으니 알 수가 없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없어. 없는 것 같아.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너무 허무하니까 그냥 사람들이 만든 걸 꺼야." 하시는 것이었다. 그제사 나는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 아버지, 있고 말고요. 혹시 아.. 2020. 6. 25.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기리는 사순시기를 맞아 고해성사를 보았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나오는데, 문득 지난 성탄절에도 같은 죄를 고백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고해성사 때마다 늘 반복되는 죄들이 있다. 다른 이들 쪽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한 죄가 그러하며, 좀 더 너그러이 사랑하지 못한 죄가 그러하다. 형사법에서는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되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삼 진법'이라는 것이 있어, 3번 이상 형사법을 어기게 되면 엄한 벌을 받는다.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짓는 내게 가중처벌 대신 용서의 자비를 베풀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일상에서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거나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죄를 짓는 .. 2020.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