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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by 동쪽구름 2020. 6. 27.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다. 코로나 탓에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아 몇 달째 종이책은 빌릴 수 없다. 전자책을 빌려 킨들로 읽었다.

 

춤 좀 추지 그래? – 살던 집을 잃게 된 사내가 세간살이를 모두 집 앞에 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거라지 세일로 생각하고 찾아온 젊은 커플은 헐값에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 그가 권하는 술을 마시며 그가 틀어준 레코드 판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뷰파인더 – 팔 없는 사내가 여자 혼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집을 사진 찍어 주인에게 파는 길거리 사진사다. 여자는 지붕에 올라 사진을 찍기로 한다. 지붕에 오르니 동네 아이들이 던져 놓은 듯한 돌멩이들이 있다. 그녀는 돌을 집어 멀찍이 던지며 그 모습을 사진 찍어 달라고 한다.

 

봉지 – 어머니와 이혼을 한 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아들이 마침 그 도시를 지나게 되어 공항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모처럼 만난 아버지는 며느리와 손자에게 줄 캔디 봉투를 들고 왔다. 커피를 앞에 두고 아버지는 자기가 바람을 피우게 된 이야기를 아들에게 늘어놓는다. 아내가 집을 비운 날 찾아왔던 외판원 여인과 한순간 사랑을 나누고 그 후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하루는 그녀의 집에서 한낮의 정사를 즐기고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집에 들이닥치게 된다.

 

아버지는 마저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아들은 비행기 시간을 핑계로 자리를 뜬다. 비행기에 타고 보니 아버지가 잊지 말고 챙겨가라고 당부했던 캔디 봉투를 가게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목욕 – 8살 생일을 맞는 아들 ‘스카티’를 위해 여인은 집 근처 제과점에 가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한다. 생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아들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 아이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꼬박 하루를 병원에서 보낸 아버지가 잠시 집에 와서 목욕을 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혹시 병원에서 온 것인가 싶어 전화를 받으니, 다짜고짜 “케이크를 안 찾아갔습니다.”라고 한다. 무슨 케이크냐고 하니 “이러지 마세요.” 하고 전화가 끊긴다.

 

남편은 병원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집에 가서 좀 쉬고 오라고 한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개에게 밥을 주고 잠시 쉬려고 소파에 앉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남자가 “웨이스 부인이요?”라고 묻는다. “예, 맞아요, 혹시 스카티 때문에 하신 전화인가요?” “맞습니다. 스카티에 관한 것입니다.”

 

(이 소설은 후에 내용이 바뀌어 다시 발표되었다. 바뀐 내용은, 결국 아이는 죽고, 제과점 주인의 전화에 화가 난 부부는 제과점으로 달려간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은 갓 구워낸 빵과 커피를 내놓으며 부부에게 어서 먹으라고 권한다. 갑자기 배고픔을 느낀 아내는 빵을 세 개나 먹는다.)

 

청바지 다음에 – 노부부가 여느 날처럼 빙고를 하러 간다. 조금 늦게 출발한 탓에 평소 차를 세우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늘 앉는 테이블에는 낯선 젊은 커플이 앉아 있다. 심기가 사나워진 남편은 아무래도 운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빙고가 시작되자, 건너편 젊은 커플이 돈도 내지 않은 용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휴게시간에 아내는 화장실에 가고, 커피를 사오 마고 했던 남편은 매점 대신 젊은 커플에게 가서 속임수를 쓰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아래에 피가 비친다고 한다.

 

그날의 잭팟은 속임수를 쓰던 젊은 커플에게 돌아가고, 집에 돌아온 아내는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 보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친구 사이인 두 쌍의 재혼 커플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사랑이다. 부인 중의 한 사람인 ‘테리’의 전 남자는 그녀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고, 남편 '멜'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우긴다. 그 남자는 결국 그녀를 잃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멜’은 화자에게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자신은 분명 첫 번째 부인을 사랑했었노라고,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로 갔느냐고. 지금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잠시 슬퍼하다가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할 것이 아니냐고.

 

의사인 멜은 자기가 병원에서 만났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노부부가 실려왔다. 생존 가능 50/50이었던 두 노인은 수술 끝에 살아남는다. 온몸을 붕대와 기브스로 감싸고 누운 남편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볼 수 없음에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다.

 

간단히 한잔하고 함께 외식을 하자던 그들은 술이 떨어지면 새 병을 열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그 자리에게 어둠을 맞는다.

 

한국의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신춘문예라는 통과 의식에 분량의 제한이 있고, 잡지에 실리면 받게 되는 고료는 원고매수로 계산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국 단편소설들은 분량에 있어 매우 자유롭다. 마치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들어가서 잠시 보다가 다시 중간에 나온듯한 느낌의 글들이 많다.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독자는 짐작만 할 뿐이다. 단편소설의 매력이다.

 

카버의 소설에는 주로 서민들이 등장한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교육 수준이 높지도 않다. 도덕이나 윤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래서 더 그들의 이야기는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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