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더 뉴요커

by 동쪽구름 2020. 6. 22.

‘더 뉴요커’(The New Yorker)는 에세이, 풍자만화, 시, 단편소설 등이 실리는 주간지다. 평소에는 권 당 $8.99의 비싼 가격이지만 아마존에서 세일을 할 때는 $5.00에 12주를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세일을 기다려 구독을 하곤 한다.

 

종이책이 도착하기 전, 전자책으로 먼저 받아 본 6월 8일 자 잡지에는 3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다. 아마도 여름호 특집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에는 한 편씩 실린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핼러윈(10월), 땡스기빙 데이(11월), 크리스마스(12월) 등의 명절이 줄지어 있어 차분히 독서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2달이나 되는 여름방학에 휴가철도 겹쳐 도리어 여름에 책을 많이 읽는다. 바닷가나 캠핑장에 가면 책을 읽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잡지에는 헤밍웨이, 하루키, 그리고 에마 클라인 (Emma Cline)의 작품이 실려있었다.

 

‘Pursuit as Happiness’(행복으로 추구) - 헤밍웨이의 미발표 단편소설이다. 평소 바다와 낚시를 좋아하던 그가 친구인 선장과 함께 배를 타고 돛새치 낚시를 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그의 손자인 ‘숀 헤밍웨이’가 보스턴에 있는 존 에프 케네디 도서관의 헤밍웨이 자료 중에서 최근에 발견했다고 한다.

 

화자와 낚싯배 대여하는 그의 친구인 선장이 돛새치를 잡으며 벌이는 이야기다. 낚싯줄에 걸린 고기와 벌이는 싸움은 마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 거대한 돛새치는 몇 시간의 사투 뒤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낚싯대가 휘어져 줄을 당기는 일이 힘들어지자 대를 바꾸기로 한다. 낚시를 돕던 선원이 줄을 잘못 끊는 바람에 돛새치를 놓치게 된다.

 

다시 나선 바다낚시에서 새로운 돛새치가 낚싯줄에 걸려든다. 화자는 다시 맞게 될 낚싯줄의 긴장감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바라던 일을 (그것이 사랑이건 사업이건) 상실한 후에도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Confession of a Shinagawa Monkey’(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 작가인 화자가 온천의 작은 여관에서 말하는 원숭이를 만나게 된다. 사람의 손에 큰 이 원숭이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맥주를 마신다. 목욕을 하는 화자 앞에 나타나 그의 등을 밀어주고, 밤에는 그의 방으로 맥주와 안주를 가지고 와 나눠 마시며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한때는 원숭이 세계로 돌아갔으나 결국 동화하지 못하고, 원숭이와는 사랑도 나누지 못한다. 원숭이가 사랑하는 것은 인간 여성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으로 그 사랑을 이룬다. 이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면허증, 여권, 신분증처럼 이름이 적힌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원숭이에게 이름을 잃은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그는 이제껏 7명의 여성을 사랑했노라고 고백한다.

 

다음날 화자가 여관을 나서며 맥주 값을 내려고 하는데, 맥주를 먹은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여관에는 자판기 캔 맥주만 있고 그가 어젯밤 원숭이와 나누어 마신 병맥주는 없다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5년 후 어느 날, 화자는 여행잡지사의 편집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이름을 자꾸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시나가와 부근에서 신분증을 분실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White Noise’(백색소음) – 미투 운동의 계기를 만들어 준 할리우드의 거물 ‘하비 와인스틴’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화이트 노이즈’는 실존하는 작가 ‘돈 드릴로’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와인스틴의 이웃으로 등장한다. 재판 전날, 그는 아픈 허리를 치료하는 시술을 받고, 딸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손녀와 저녁을 먹는다. 그는 돈 드릴로와 합작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 구상을 하고, 그날 밤 자기 집 앞에 세워 둔 차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는 작가에게 다가간다.

 

자신이 저지른 성추행이나 다가올 운명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전혀 무감각한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