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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93

불효자는 웁니다 출근길,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를 찾던 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가시고 나니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옛 기억들이 떠 오른다. 장애인 편의시설이라고는 전무하던 시절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며칠을 울고 떼를 쓰던 나를 달래고 안방 학교를 차려 내게 공부를 가르쳤다. 커다란 달력 종이 뒷면에 “ㄱ, ㄴ, ㄷ, ㄹ”을 쓰고 “ㅏ, ㅑ, ㅓ, ㅕ”를 써서 붙여놓고 “가, 나, 다, 라”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한글을 배웠다. 덧셈, 뺄셈, 구구단도 그렇게 배웠다. 어머니는 자주 나와 내 동생에게 옛날이야기와 동화를 들려주곤 했는데, 훗날 집에 있는 책들을 읽다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백과사전.. 2020. 7. 21.
거라지 세일 벼르던 거라지 세일을 했다. 차고를 정리하던 아내가 거라지 세일을 하겠노라고 선언하더니 그다음 주로 날짜를 잡아버렸다. 금요일 오후 퇴근길에 보니 세일을 한다는 종이를 골목 군데군데 전봇대에 붙여 놓았다. 남들은 요란한 색상에 큰 글씨로 만들어 붙이던데, 우리 것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다. 저걸 보고 사람들이 올까? 다음날 아침 6:30분, 아직 물건을 다 꺼내지도 않았는데 첫 손님이 왔다. 많이 살 것처럼 물건을 이것저것 한참이나 고르더니 달랑 햇볕 가리개를 하나 산다. 1불이다. 아내는 그녀가 예의가 있는 손님이라며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던 그릇을 덤으로 주었다. 자기가 첫 손님인 것을 알고 개시는 해 주고 갔다는 것이다. 아침나절 심심치 않게 손님들이 찾아와 물건은 많이.. 2020. 7. 20.
프로처럼 살기 골프를 아주 잘 치는 사람들은 공을 보내고 싶은 곳을 바라만 보고 쳐도 공이 그쪽으로 가고, 보통 잘 치는 사람들은 치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공이 간다고 한다. 그러나 서툰 아마추어들이 치면 공은 걱정했던 대로 가서 물에 빠지기도 하고 컵을 비켜가게도 된다고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한 가지 일을 10-20년쯤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를 제법 전문가로 인정해 준다. 청년의 나이에 시작하여 머리가 반백이 될 무렵까지 한 가지 일에 매달린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쯤 되면 그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하며 매사에 여유를 갖게 되고 곁에서 보는 이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내 나이 이제 60이 넘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사는 일에 매달려 지내온 셈이다... 2020. 7. 16.
성추행의 시작은 성희롱이다 2017년 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해시태그(#MeToo)를 다는 행동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Me Too)의 바람이 한국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의 연예계에 성폭행과 성추행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나올 때, 나는 점심을 함께 먹는 직장동료들과 이러다가 누군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국 ‘조민기’라는 배우가 죽음이라는 극단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큰 안전사고나 뇌물 사건 등이 터지면 누군가 죽음으로 끝을 내곤 한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잘못된 정서가 아닌가 싶다. 사람이 죽기로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무엇이며 어떤 고통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비겁하고 나약한 짓이다. 잘못을 저질렀.. 2020.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