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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영어공부 - 이렇게 해 보세요

by 동쪽구름 2020. 8. 13.

내가 영어를 배운 것은 14살 무렵의 일이다. 겨울 방학 동안 누나에게서 알파벳과 영어의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는 주로 혼자 공부를 했다. 쓰는 대로 읽는 한글과 달리 영어는 철자가 비슷해도 단어에 따라 다르게 읽기 때문에 발음을 익히는 일이 힘들었다. 새로운 단어는 미리 사전에서 뜻을 찾아놓은 다음 학교에서 돌아온 누이에게 발음을 물어 한글로 적어 놓고 외웠다.

  

그 후 몇 년 동안 서울의 중,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교재는 거의 구해서 공부를 했다. 교과서를 베껴 쓰며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익혔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시사영어’라는 잡지를 구독했다. AFKN 미군 영어방송을 보고 들었고, 시청각 교재로 나와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구해 듣기도 했다.

 

그때 내가 터득한 방법은 문형을 외우는 것이었다. 영어교과서는 대개 새 단원마다 새로운 문형을 소개하고 반복해서 응용하는데 기본 문형을 외운다음 단어를 바꾸고 시제를 바꾸면 수십 개의 새로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상황을 만들어 놓고 책에서 보고 베낀 문장을 가지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만들었다. 그 무렵 해외 펜팔이 유행을 했다. 노르웨이에 사는 소녀와 영어로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처음으로 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 후의 일이다. 우리 집은 그때 경기도 벽제에 살고 있었는데 근처에 미군 미사일 부대가 있었다. 하루는 그 부대의 백인 부중대장이 방을 구하러 왔다. 난 그때 내가 하는 서툰 영어를 미국인이 알아듣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에 나와서 살게 되었는데, 근처에 살만한 집을 구하고 있었다. 내 통역으로 그의 가족은 아래채 방에 세를 살게 되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얼마 후에는 또 다른 미군 병사가 세를 들어왔다.

  

미군 병사의 아내는 ‘테리’라는 이름의 백인 여성이었다. 나는 매일 그녀에게서 30분가량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녀가 책을 한 줄 읽으면 내가 따라 읽고 내 발음이 틀리면 그녀가 고쳐주는 식이었다. 그때 나는 영어는 발음도 중요하지만 문장의 고저장단을 잘 맞추어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문법과 독해 위주로 영어를 가르쳤다. 그래서 대학에서 영문과를 나온 사람도 미국에 오면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발음상의 문제 때문이다.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고, 한국에서 배운 영어로 직장에 다니며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내 영어 실력은 한국에서 공부해서 온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 와서 받은 영어수업은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4년 제로 편입하는데 필요한 ‘English 28’ (문법)과 ‘English101’ (작문)이 전부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하면서 저지르는 큰 실수 중의 하나는 한국말로 생각한 후 영어로 번역을 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선 한국말과 영어는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직역이 어렵다. 정서적인 차이 때문에 직역을 해서는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영어다운 영어를 하려면 생각부터 영어로 시작해서 말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식의 표현을 많이 외우고 있어야 한다. 또한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알고 있는 단어들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외무부 장관 출신이며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영어 표현을 보거나 들으면 적어 놓는 노트를 수십 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막연히 미국에 가면 영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이민 와서 20-30년 이상 산 동포들 중에도 영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란 단순한 대화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에는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와 정서가 들어 있다. 따라서 미국식 영어를 잘하려면 미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 영어를 잘하게 되면 미국식 사고와 정서를 갖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어에 왕도는 없다. 노력한 만큼의 결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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