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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18

추억의 함박스테이크 요즘은 한국의 외식 메뉴도 다양해져 파스타를 비롯해서 전 세계 음식을 풍족하게 맛볼 수 있지만, 60-70년대는 사정이 좀 달랐다. 조금 고급스런 외식이라면 경양식 정도였다. 경양식이란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메뉴에는 비프스테이크도 있긴 하지만, 보통의 데이트 코스라면 함박스테이크나 돈가스, 오므라이스 정도였다. 내가 처음으로 서양요리에 맛을 들인 것은 외할아버지를 통해서다. 할아버지는 인사동을 중심으로 돈 있는 상인들을 모아 친목회를 운영하셨다. 회원들이 투자한 돈을 굴려 그 이자로 모임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었다. 친목회의 정기모임은 주로 식당에서 이루어졌는데, 중식, 일식, 또는 경양식집 등에서 이루어졌다. 장소를 예약하고 회원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는데.. 2020. 7. 19.
비린 맛 함경도가 고향인 부친은 고기보다 생선을 더 좋아하셨다. 어려서 우리 집 밥상에는 거의 매일 생선이 올라왔다. 고향에서는 생일이면 감자가 듬성듬성 들어 간 쌀밥에 무를 채 썰어 넣은 가자미 국을 미역국 대신 먹었다는 아버지의 투정에 가끔은 아버지 생신에 미역국 대신 가자미 국이 상에 오르기도 했다. 별식으로 민어나 조기 국을 먹는 외가와 달리, 집에서는 온갖 비린 맛의 생선이 국이 되어 올라왔다. 동태나 병어는 물론 도루묵까지 국으로 탈바꿈해서 올라왔다. 외할아버지는 생선가시를 무척이나 무서워해서 생선이 상에 오른 날이면 할머니가 곁에서 가시를 발라드렸다. 그러다가 잔가시라도 하나 나오면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생선의 가운데 토막은 할아버지와 나의 몫이었고, 할머니는 생선 대가리와 꼬리만 잡수셨.. 2020. 7. 17.
안동 고등어와 문어 아내와 결혼을 하고 처음 처갓집으로 인사를 가던 날, 내가 받은 상에 오른 것은 씨암탉이 아니라 안동 고등어와 문어였다. 고등어가 바다에서 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바다 구경도 못하는 내륙지방 안동에서 고등어가 ‘지역 명품’ 이 된 것은 누가 봐도 아리송한 일이다. 하지만 바다가 없기 때문에 맛 좋은 ‘안동 간고등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한말 장사치들이 안동과 가장 가까운 바다인 영덕 강구항에서 안동 장터까지 고등어를 등에 지고 200 리의 길을 걸어서 운반하는데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유난히 비린내가 많이 나고 쉽게 부패하는 생선인 간고등어를 가지고 오는 방법은 쉽지 않았던 것. 그래서 고등어가 상하지 않도록 염장을 했던 것이다. .. 2020. 7. 11.
도루묵과 젤로 어려서 우리 집에서는 생선을 많이 먹었다. 부친이 생선을 좋아해 명태, 가자미, 꽁치, 고등어, 병어, 등 온갖 생선이 상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값싼 도루묵을 많이 먹었다. 도루묵은 조림이나 국으로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살짝 말려 연탄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워 먹는 구이가 최고로 맛있다. 산란기의 도루묵은 살 반에 알이 반이라 할 정도로 알이 많다. 씹어먹으면 고소한 알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 요즘 한국에서는 도루묵 구이가 별미로 알려져 식도락가들이 연탄구이 전문집을 찾아다닐 정도라고 한다. 이 맛을 기억하는 동생이 언젠가 도루묵을 사다 주어 끓여 먹었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던 맛 하고는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냉동을 했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도루묵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다음.. 2020.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