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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안동 고등어와 문어

by 동쪽구름 2020. 7. 11.

아내와 결혼을 하고 처음 처갓집으로 인사를 가던 날, 내가 받은 상에 오른 것은 씨암탉이 아니라 안동 고등어와 문어였다.

 

고등어가 바다에서 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바다 구경도 못하는 내륙지방 안동에서 고등어가 ‘지역 명품’ 이 된 것은 누가 봐도 아리송한 일이다. 하지만 바다가 없기 때문에 맛 좋은 ‘안동 간고등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한말 장사치들이 안동과 가장 가까운 바다인 영덕 강구항에서 안동 장터까지 고등어를 등에 지고 200 리의 길을 걸어서 운반하는데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유난히 비린내가 많이 나고 쉽게 부패하는 생선인 간고등어를 가지고 오는 방법은 쉽지 않았던 것. 그래서 고등어가 상하지 않도록 염장을 했던 것이다. 바다가 가깝지 않은 내륙지방에서 맛보는 안동 간고등어는 유난히 맛이 있었을 것이다.

 

안동에서는 간고등어 보다도 문어가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안동지방에서는 생일, 결혼, 회갑, 상례, 제사 등 집안의 큰일을 치를 때뿐 아니라 집들이, 계모임, 동창회 등 각종 행사 접대음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문어이다.

 

문어는 한자로 문어(文魚)라 쓰는데, 안동은 예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선비들은 학문을 뜻하는 문어(文魚)를 양반 고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문어는 안동사람들의 선비정신과 학문을 잘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반상에 오르는 음식이라 삶는 물의 온도, 간, 시간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안동문어의 고유한 맛이 나온 것이다. 다른 음식이 부족하고 예에 맞지 않아도 문어만 나오면 잔치음식은 최고로 친다.

 

또한 문어의 둥근 머리는 도의 원리를 알려주는 것으로 깨달음을 뜻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어 생활하는 습성은 안동 선비들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겸양의 뜻을 담고 있으며, 위급할 때 내뿜는 먹물은 글공부하는 선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으로 여겨 안동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결혼하기 몇 달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인사를 드리고, 결혼 전에 가족 상견례 자리가 있었고, 신혼여행 다녀와 인사를 간 것이니 사위라고는 하지만 아직 겨우 얼굴만 익힌 서먹한 사이였다.

 

온돌을 사용하는 방에 이웃에서 빌려 온 테이블과 의자로 식탁을 만들고, 문턱에는 널빤지를 놓아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까지 만들어 놓았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받은 밥상에는 그 유명한 안동고등어와 먹어 본 적 없는 문어숙회가 올라왔다.

 

부모의 마음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자식이 좋은 사람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장인도 그런 마음으로 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고 문어를 샀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감동시킨 것은 안동고등어와 문어가 아니고 문턱에 놓인 널빤지 경사로였다.

 

요즘도 고등어를 먹을 때면 그때 일을 생각하곤 한다. 남을 배려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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