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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18

서울 음식 아내는 음식 솜씨가 좋다. 뭐든지 한두 번 먹어 보면 거의 비슷하게 만든다. 서양식 고기 요리며, 파스타, 제빵/제과에 떡 등도 모두 뚝딱 만들어 낸다. 다만 그녀가 만드는 고향 (안동) 맛의 반찬은 내 입맛과는 다소 다르다. 국에는 건더기가 많고 밑반찬의 간이 좀 세다. 나는 국은 국물 위주로, 반찬의 간은 싱거운 것이 좋다. 나의 외가는 양반은 아니지만 양반처럼 살고 싶어 하던 토박이 서울 중인 집안이다.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낸 나의 입맛은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음식에 길들여졌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갈비 우거지 된장국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연 해방 전후 서울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찾아보았는데, 이렇다 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어려서 외가에서 먹었던 것들이 그 시절 .. 2023. 10. 18.
종이 아줌마의 빵 며칠 전의 일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마켓에 갔다가 한국 빵집에 들렀다. 갓 구워낸 맛있어 보이는 온갖 빵들이 있었다. 빵을 보니 문득 옛일이 생각났다. 이모의 친구 중에 '종이 아줌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종희' 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종이'라고 들렸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종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녀가 이모를 찾아 외가에 왔었다. 그날따라 이모는 외출을 하고 집에 없었다. 할머니는 종이 아줌마에게 잠깐 집을 좀 지키고 있으라며 장에 가셨다. 한옥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집에 있어야 했다. 나와 종이 아줌마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 기다란 빵을 사들고 있었다.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주려고 샀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린 동생들이 여럿 있었다. 피하려고 하.. 2020. 10. 4.
할머니의 고추장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라고 한다. 조선 개화사에 의하면 이때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돌살키 위하여 가져왔으나 우리 체질에 맞아 즐겨 먹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내가 매운맛을 접한 것은 3-4 살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김치를 물에 씻어 밥에 올려 먹은 것이 내가 처음 맛 본 매운맛이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대개 물에 씻은 김치를 시작으로 밥상 위의 반찬에 맛을 들여 갔다. 내가 자란 외가에는 손바닥 만한 마당에 반지하의 창고가 있어 그 지붕에 할머니의 장독들이 있었다. 그중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고추장 항아리였다. 3-4년쯤 묵힌 찹쌀고추장은 요즘 고추장과는 달리 검은빛이 돌며 끝 맛이 달짝지근했다.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고추를 말려 씨를 빼고 .. 2020. 9. 30.
테이블 매너 나는 늘 외할아버지와 겸상으로 밥을 먹었다. 내가 할아버지와 밥을 먹고 나면, 할머니와 이모가 그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늘 그렇게 지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외가에는 나름의 밥 먹는 예절이 있었다. 밥상을 받으면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시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들 수 없다. 반찬도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대신 후에야 먹을 수 있다. 맛있는 반찬이라고 해서 그것만 먹어서도 안되고, 눈치껏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밀어주시곤 했기 때문에 늘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가끔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전혀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된다. 2-3년 터울의 5남매가 모여 먹는 밥상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조용히 먹던 내게는 문화적 충격.. 2020.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