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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서울 음식

by 동쪽구름 2023. 10. 18.

아내는 음식 솜씨가 좋다. 뭐든지 한두 번 먹어 보면 거의 비슷하게 만든다. 서양식 고기 요리며, 파스타, 제빵/제과에 떡 등도 모두 뚝딱 만들어 낸다. 다만 그녀가 만드는 고향 (안동) 맛의 반찬은 내 입맛과는 다소 다르다. 국에는 건더기가 많고 밑반찬의 간이 좀 세다. 나는 국은 국물 위주로, 반찬의 간은 싱거운 것이 좋다. 

 

나의 외가는 양반은 아니지만 양반처럼 살고 싶어 하던 토박이 서울 중인 집안이다.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낸 나의 입맛은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음식에 길들여졌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갈비 우거지 된장국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연 해방 전후 서울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찾아보았는데, 이렇다 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어려서 외가에서 먹었던 것들이 그 시절 서울 음식이었는지 아니면 할머니표 음식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 음식은 간이 세지 않아 식재료의 맛이 잘 우러난다. 국의 간은 간장으로 맞추고, 마늘 같은 향신료나 양념도 과하게 쓰지 않는다. 김치에는 새우젓이나 멸치젓을 넣고, 생선을 굽기보다는 조림을 한다. 생선은 민어를 최고로 치고, 조기와 병어 등을 먹었으며, 여름에는 굴비를, 북어는 잘 두드려 살을 부드럽게 해서 불고기와 함께 양념을 했다가 구워 먹었다. 소고기는 간장, 돼지고기는 고추장 양념에 재어 두었다가 석쇠에 구워 먹는다. 

 

복날 먹는 삼계탕이나 어쩌다 먹는 닭볶음(간장) 외에는 닭고기는 잘 먹지 않았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돼지 삼겹살이나 소 양지머리를 삶아 베 보자기로 싸 맷돌 같은 무거운 것을 올려 기름을 빼고 식혀 편육을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장만한 편육은 소쿠리에 담아 서늘한 곳에 두고 며칠씩 먹을 수 있다. 

 

국보다는 찌개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어나 조기를 넣은 생선찌개, 소고기를 조금 넣고 끓인 두부 고추장찌개, 두부와 명란을 넣고 맑은 장국에 끓여 새우젓으로 간을 한 알찌개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국은 소고기 뭇국과 곰탕, 생일에 먹는 미역국 정도를 먹었다. 

 

비린 맛이 강한 등 푸른 생선은 먹지 않았는데, 자반고등어만은 예외였다. 요즘은 다들 고등어를 구워 먹지만, 할머니는 냄비에 자반고등어와 무를 넣고 쌀뜨물을 조금 부어 자작하게 끓였다. 

 

이런 외가에 비해 우리 집 밥상에는 좀 더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했다. 그 무렵 ‘식모’라고 불리던 지방출신 상주 가사 도우미들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향토 입맛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기억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가물가물해지는데 입맛은 여전히 살아있어 어려서 먹던 음식들이 자주 생각나며 먹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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