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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요리의 달인

by 동쪽구름 2020. 9. 14.

주 정부 공무원이 되어 처음 근무했던 사무실에 ‘Janet’이라는 백인 여성이 있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직장에 익숙해지기까지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한국인임을 안 그녀가 한국식 불고기 조리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한국식 구이를 좋아하는 그녀와 남편은 가끔 밸리의 ‘덕수장’에 (지금은 없어졌다) 가서 불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고추장 양념을 한 돼지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내 손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려서 외할머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에 불고기 양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푸줏간에서 기계로 썰어 주는 고기를 사지 않았다. 늘 돼지의 삼겹살을 사다가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저며 양념을 하셨다. 정작 할머니는 돼지고기를 잡숫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돼지불고기는 구어 놓으면 간이 딱 맞았다. 

 

난 그녀에서 돼지 불고기 양념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간장과 고추장을 파는 한국 식품점도 알려 주었다. 문제는 내가 양념의 비율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적당히 맛을 보아가면서 넣으라고 했다. 

 

며칠 후 그녀가 집에서 만든 돼지 불고기를 가지고 와서 맛을 보라고 내밀었다. 고추장이 좀 적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분명 한국식 돼지 불고기 맛이었다. 난 그때 요리에 솜씨가 있는 사람은 먹어 본 요리는 대충 재료만 알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녀에게서 미국식 고기 로스트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마켓에서 파는 소고기 덩어리를 사서 겉에 로스트용 양념과 굵은소금을 문질러 바른 후, 화씨 375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325-375 도로 구우면 된다. 이때 보통 파운드 당, 20-25 분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 오븐마다 온도의 차이가 있고 고기가 열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한, 두 번 해 보면 적당한 시간을 알 수 있다. 

 

로스트용 양념은 기호에 따라 만들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굵은소금과 후추, 마늘 가루에 양파 가루나 마른 허브 가루 등을 섞기도 한다. 

 

약간 덜 익은 것이 좋으면 조금 일찍 꺼내고, 잘 익은 것이 좋으면 조금 더 두었다가 꺼내면 된다. 고기를 오븐에서 꺼낸 후, 10-15 분 정도 식혀서 잘라야 육즙이 빠지지 않아 맛있다. 뜨거운 고기를 썰면 육즙이 모두 빠져 버려 고기가 맛이 없어진다. 오븐에서 꺼내어 15분 정도 놓아두면 육즙이 다시 고기 안에 스며들어 촉촉한 로스트가 된다. 첫날은 이렇게 로스트로 먹고, 식은 고기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날 얇게 저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 담백하니 맛있다.

 

돼지고기나 칠면조, 닭고기 등도 같은 방법으로 로스트를 만들 수 있다. 로스트를 만들 때 같은 팬에 감자나 당근, 양파 등을 넣어 익혀 먹기도 한다. 

 

미국식 구운 고기는 양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고기 맛이 중요하다. 고기의 맛은 가격과 비례한다. 비싼 고기일수록 맛있다. 하지만 미국 마켓에서는 매주 돌아가며 다른 부위의 고기를 세일하기 때문에 그냥 세일하는 고기를 저렴하게 사서 먹는 것도 좋다. 

 

맛있기로는 프라임 립이 으뜸이지만, 트라이 팁 (tri-tip)이라는 부위도 가격 대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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