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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탱'으로 만든 얼음과자

by 동쪽구름 2020. 8. 23.

오렌지 주스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내 나이 4-5세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삼촌의 팔에 안겨 서커스 구경을 가서 삼각형 비닐봉지에 든 오렌지 음료를 마신 기억이 있다. 요즘도 동남아에서는 이렇게 비닐봉지에 음료수를 넣어 파는 것 같다. 

 

오렌지 주스에 관한 그다음 기억은 누나와의 일이다. 누나가 중학교 1학년쯤 되었으니 내 나이는 10-11살 정도. 그날 외가에는 누나와 나, 둘이 있었다. 그 동네에는 오후 3-4시가 되면 리어카에 잡다한 물건을 싣고 오는 고물장수가 있었다. 엿이나 강넹이를 싣고 다니는 여느 고물장수와 달리 그는 과자와 사탕, 딱지와 장난감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들을 싣고 다녔다.

 

물자가 귀해 빈 깡통, 신문, 잡지, 헌 공책은 물론 빈병도 재활용을 위해 사가던 시절이다. 마당 한구석에 할머니가 모아 놓은 빈병을 하나 들고나간 누나가 오렌지 주스 가루 한 봉지와 바꾸어 왔다. 아마도 그 분량으로는 8온스 컵 하나 정도의 물과 섞어 마셔야 했을 것이다. 무조건 많이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반도 넘게 물을 채우고 주스 가루를 섞었다. 그다음 일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후에는 집에 가면 진짜 주스 가루로 만든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어머니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는 ‘양키 물건 장수’ 아주머니에게서 산 미제 ‘Tang’ 가루였다.

 

더운 여름날이면 누나가 ‘탱’ 가루로 만든 주스를 얼려 얼음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걸 입에 넣고 빨아먹으면 처음에는 새콤 달콤한 주스물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하얀 얼음만 남는다.

 

과일 오렌지는 미국에 와서 처음 먹어 보았다.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오렌지 주스에 보드카를 넣어 만드는 칵테일을 '스크루 드라이버' (screwdriver)라고 한다. 은퇴하기 전 내가 일하던 직장의 지역 사무소장 중에 ‘밥’ (Bob)이라는 백인 영감이 있었다. 직원 연수에 가서 보면 그는 아침 식사 때부터 이걸 마셨다. 모르긴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마셨지 싶다. 그는 늘 술에 적당히 취해 있었다. 평소에도 늘 코가 빨갛고, 말을 하면 혀 짧은 소리를 했다.

 

지역 사무소장이라는 위치 때문이었는지 그가 함부로 말을 해도, 여직원의 빰에 뽀뽀를 해도, 아무도 그를 말리거나 탓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도 30여 년 전에는 사무실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성희롱 같은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젤리나 캔디는 오렌지 맛을 좋아하지만, 정작 주스는 오렌지보다는 파인애플을 선호한다. 얼음을 서너 개 넣은 달달한 파인애플 주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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