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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갈비 이야기

by 동쪽구름 2020. 8. 7.

오래 전의 일이다. 귀한 집에 찾아갈 때는 고기를 사들고 가던 시절이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소갈비가 한 짝 들어왔다. 어른들이 손도끼와 톱으로 갈비를 잘라 구이를 했는데, 통갈비를 숯불에 구우니 겉은 타들어 가도 속은 익지 않았다. 익은 부분을 떼어먹고 다시 불에 올려 구워 먹었는데, 안으로는 양념이 배어들지 않아 맛이 없었다. 결국 먹다 남은 갈비를 넣고 우거짓국을 끓여 먹었다. 그때만 해도 갈빗살을 얇게 펴서 양념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수원갈비가 유명했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의 사촌 동생인 원규 삼촌의 권유로 아마추어 무선사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원규 삼촌과 이모가 나를 데리고 수원 갈빗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갈비구이를 먹어 보았다.

 

그 후 집에서 벽제갈비를 하게 되어 갈비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갈비가 짝으로 들어오면 주방에서 작업을 한다. 살을 다듬고 뼈를 잘라 갈비를 나누고, 살을 펴서 살짝 칼집을 내어 양념을 한다. 이때 더러 살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바늘에 실 대신 가는 심줄을 끼워 갈빗살을 덧붙이기도 한다. (갈비 장사의 비밀이다.)

 

척추와 가슴 부위에 삐죽 나온 갈비는 마구리라고 하는데, 불갈비용으로는 적당치 않아 따로 잘라 갈비탕을 끓인다.

 

갈빗집을 했으니 갈비는 실컷 먹었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사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갈비를 먹기는 했는데, 가게를 하는 동안에 실컷 먹어 본 기억은 없다. 몇 해 전 부모님 모시고 동생네와 서울에 갔을 때, 벽제갈비를 찾아 옛이야기를 하며 푸짐하게 사 먹은 일이 있다.

 

갈빗집을 하는 동안에는 주말이면 갈비 한 대, 냉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갈빗집이 교외에 자리하고 있어 주말에 손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로 밥을 차려 먹을 시간이 없으니 갈비 한 대, 냉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운 것이다.

 

장사를 하는 동안 누나와 남동생은 마음 편히 주말에 놀아 본 적이 없다. 누나는 카운터를 도왔고, 동생은 갈비 구울 불을 피우고, 불판 닦는 일로 주말을 보내곤 했다.

 

80년대 초 미국에 와서 세로로 자른 LA 갈비를 처음 보았다. 갈비를 이렇게도 자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누구네 집에서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면 의례히 LA 갈비를 내놓았다. 풀장이 있는 큰 집에 살며 냉동실에는 늘 양념 갈비가 있는 교우가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그 집에 모였다가 끼니때가 되면 갈비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던 그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어느 날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내가 잘 만드는 간단한 갈비찜 레시피다.

 

마켓에서 파는 손질한 통갈비를 2-3 팩 사서 서너 군데 깊숙이 칼집을 내어 찬물에 1-2시간 담가 피를 뺀다. 큼지막한 냄비에 물을 끓여 피를 뺀 갈비를 넣고 뚜껑을 연 채 10분 정도 데친다. 갈비를 꺼내 물에 씻고 냄비의 물은 버리고 갈비가 잠길만큼 새로 물을 담는다. 남은 피와 기름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냄비의 물에 데친 갈비와 통마늘을 넣고 뚜껑을 덮어 1시간 정도 삶는다.

 

갈비가 반쯤 잠길 만큼만 물을 남기고 남어지는 버린다. 물과 1대 1 비율로 간장을 붓고 ¼ 컵 정도의 설탕을 넣는다. 간장과 설탕을 물과 대충 섞어 주고 크기에 따라 절반 또는 ¼ 로 자른 감자와 양파를 넣어 약한 불로 30분 정도 더 끓인다. 식성에 따라 당근을 넣어도 된다.

 

달걀지단이나 실고추로 멋을 내지 않아도 맛은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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