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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기억

내장탕

by 동쪽구름 2020. 9. 11.

난 소나 돼지의 내장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서는 내장을 많이 먹었다.

 

소의 간은 저며서 달걀을 씌워 전을 만들어 먹었다. 따뜻할 때 초간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식은 것을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미국에 오니 ‘liver and onion’이라는 요리가 있었다. 얇게 저민 소 간에 밀가루를 묻혀 베이컨 기름에 양파와 함께 지진 요리다. 80-9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식당의 메뉴에 들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 간은 가격이 저렴해 전에는 자주 해 먹었는데, 언제부턴지 간을 먹고 나면 다음날 소변 색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 먹지 않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겨울이면 곱창과  양, 사태를 넣고 끓인 곰국을 만들어 먹었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곰국에 밥을 말아 김장김치와 먹으면 정말 맛있다. 이곳의 멕시칸들은 이와 비슷한 ‘메누도’라는 내장탕을 먹는다.

 

우리 집 식탁에 내장이 자주 오른 것은 살코기보다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의 콩팥과 염통도 나름 맛있다. 피를 빼고 기름을 제거한 콩팥이나 염통을 저며 불고기 양념을 해서 구워 먹었다. 사각 전기 프라이 팬에 양파를 넣고 함께 볶으면 국물이 생기는데, 밥에 넣어 비벼 먹으면 맛있다.

 

순대와 돼지 간, 그리고 함께 따라 나오는 부속고기들도 내가 좋아하는 내장요리다. 새우젓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후추와 깨를 섞은 굵은소금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훗날 기자촌이 들어서고 지금은 서울의 일부가 되었지만 60년대 말 구파발은 아직 시골이었다. 우리가 이사를 들어가고 얼마 후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소규모로 양계를 하고 있었는데, 집에는 일하는 사람들까지 합해 늘 10여 명의 식구가 있었다.

 

가을이면 돼지를 한 마리 잡곤 했다.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돼지를 보고 나면 처음에는 밥상에 오르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다가도 솥에서 갓 쪄낸 순대를 접하게 되면 어느새 식욕이 돋았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겠다고 돼지 창자를 삶아 도마에 올려 썰었는데, 그 안에서 똥이 나왔다. 돼지를 잡아 손질하는 과정에서 비워내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기가 흔한 미국 사람들은 내장에 별 관심이 없지만 대부분의 민족들은 내장을 먹는 것 같다. 수년 전 PBS (공영방송) 프로에서 스페인 농가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치 예전에 우리 집에서 했듯이 가을에 돼지를 잡았다. 살은 큰 덩어리로 잘라 나무통에 겨와 소금을 넣어 저장하고 머리와 내장을 삶아 가족이 맛나게 나누어 먹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내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삼계탕이나 닭볶음탕을 하면 간과 모래집은 늘 내 몫이었다. 한데 조카 녀석들이 오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놈들도 내장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고모부 체면에 냄비에 든 닭 내장을 냉큼 건져먹기가 좀 그렇다. 가끔 아내가 슬쩍 떠 주는 닭 내장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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