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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성당에서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를 위한 ‘연도’를 한다. 참석자들이 기도문에 음률을 넣어 노래로 주고받으며 이어가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다. 선창과 리드를 할 사람이 없으면, 그냥 읽어도 된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에는 상을 당하면 회관에서 별도의 연도 모임이 있었다. 가족은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준비하고, 신자들이 모여 초를 켜고 망자의 사진을 앞에 놓고 연도를 드렸다. 연도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가족에게 위로의 말과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슬픔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회관에서 연도 모임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신자인 아내와 내가 연도 모임을 사진으로 찍어 형제들에게 보내주었다. 코로나로 성당이 문을 닫자 상을 당해도 별도의 모임은 할 수 없었고, 연령회.. 2023. 4. 23.
이토록 작은 것들 ‘빌 훨롱’은 아일랜드의 ‘뉴 로스’라는 마을에서 석탄과 장작을 파는 장사를 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내 ‘아일린’과 5명의 딸이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고살만하다. 그는 이웃의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을 사업체의 직원으로 고용해서 쓴다. 그의 어머니는 부유하고 보수적인 마을의 부농인 ‘윌슨’ 부인의 대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던 중 미혼모로 그를 낳다. 어머니는 죽기 전까지 결코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는 대저택에서 어머니와 또 다른 일꾼 ‘네드’와 함께 살았으며, 윌슨부인 덕에 직업학교를 마치고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985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훨롱은 수녀원에 석.. 2023. 4. 22.
2D Design (2) 지난 두 주 과제물은 일본 미술 장르인 노탄 아트 (Notan Art), 대칭 오리기였다. 짙은 색의 종이에서 선이나 도형을 오려 펼치면 좌우에 같은 모양이 만들어진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 생긴 모양이 반대쪽 빈 공간에 하나 더 생기며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검은색 종이나 페인트를 쓰는 대신 검은색 페인트를 만들고 그걸 종이 앞 뒷면에 칠해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팔레트에 암갈색(burnt umber) 아크릴 물감과 군청색(ultramarine) 물감을 짜놓고, 이를 팔레트 나이프로 조금씩 덜어 섞어 가며 만든다. 앞 면에 한결로 골고루 잘 발라 말린 후, 뒷면에도 같은 방법으로 칠을 해 말리면 필요한 검은색 종이가 마련된다. 물감은 젖었을 때와 말랐을 때가 다르다. 젖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 2023. 4. 16.
사순시기를 끝내며 성당에서는 사순시기를 마감하고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서 신부님이 무릎을 꿇고 신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세족식을 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세족식 참석 인원은 예수님 살아생전의 제자수인 12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자 수가 많은 큰 성당에서는 하고 싶어도 세족식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선택되면 그건 은총이며 축복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은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수가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성당이다. 그래서 웬만한 신자들은 모두 한 두 번은 세족식에 참여해 보았다. 신부님에 따라 세족식에 참여하는 사람을 정하는 방법도 다르다. 미리 정해 놓기도 하고, 제비를 뽑기도 하고, 원하는 신청자를 받기도 한다. .. 2023.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