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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윌리엄 나는 그가 죽고 난 다음에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도 10여 년은 지난 일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정거장 벤치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옆에는 바퀴 달린 철제 트렁크 카트에 가방이 실려 있었다. 홈리스임이 분명한데 여느 홈리스와는 달라 보였다. 나이는 50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 벤치는 그의 거처가 되었다.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상가 주변에 무리를 지어 텐트를 치고, 주변에 너저분한 물건과 쓰레기를 널려 놓는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 잠을 자기도 하고, 더우면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기도 하고, 낮에도 술이나 약에 취해 뻘건 .. 2023. 3. 13.
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일찍이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이 제대로 문학을 할 수 없는 것은 여성은 돈이 없고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나는 방의 소유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는 밤이면 두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코로나 펜데믹으로 자택 대피령이 내려 사무실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주 또는 몇 달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장기화하며 결국 재택근무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집에 있는 3개의 방에는 모두 주인이 있다. 작은 방 두 개는 우리와 살고 있는 조카 둘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고, 큰 방은 아내와 내가 쓴다. 아이들도 학교에 나가지 못하니 .. 2023. 3. 9.
눈 오는 날 1987년 발표되었던 이창동 감독의 단편소설 ‘눈 오는 날’이 영어로 번역되어 3월 6일 자 뉴요커 잡지에 실렸다. 이야기는 젊은 여성이 군부대를 찾아와 위병소에서 김영민 일병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병소의 초병이 그녀에게 어디서 왔으며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왔으며 공장에 다닌다고 말한다.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김일병은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첫 잠복근무에 총을 두고 나갔고, 밤에 오줌이 마려운데 잠든 동료를 깨우지 못해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는 동료와 함께 가야 한다.) 수통에 오줌을 누었다가 다음날 장비 검사 때 걸렸으며, 사격 훈련에서도 낙제를 한다. 사격 점수 미달로 외박이나 휴가에서도 늘 제외된다. 그와 함께 야간 경계를 서고 있는 최병장은 목욕탕 때밀이 출신이며 김일.. 2023. 3. 7.
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은 작가 김훈이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누비며 보고 느낀 것을 쓴 에세이 집이다. 내가 산 책은 2004년에 나온 개정판인데, 이 책은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다른 표지로 출판이 되었다. 책에는 함께 여행했던 프리랜서 사진가 ‘이강빈’의 사진들도 들어 있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책에 실린 글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산불이 난 강원도 고성을 보고는 타버린 숲은 자연복원력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대학교수의 말이다. 나는 이 글에 매우 공감한다. 여름내 비가 오지 않는 남가주에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다발적으로 산불이 난다. 산불이 나서 까맣게 타버린 숲도 다음 해에 가보면 풀이 .. 2023.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