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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자전거 여행

by 동쪽구름 2023. 3. 3.

‘자전거 여행’은 작가 김훈이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누비며 보고 느낀 것을 쓴 에세이 집이다. 내가 산 책은 2004년에 나온 개정판인데, 이 책은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다른 표지로 출판이 되었다. 책에는 함께 여행했던 프리랜서 사진가 ‘이강빈’의 사진들도 들어 있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책에 실린 글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산불이 난 강원도 고성을 보고는 타버린 숲은 자연복원력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대학교수의 말이다. 나는 이 글에 매우 공감한다. 여름내 비가 오지 않는 남가주에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다발적으로 산불이 난다. 산불이 나서 까맣게 타버린 숲도 다음 해에 가보면 풀이 나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에서 새로 가지가 나오고 싹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을 제거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일이 될 수 있는 산불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생의 사이클일 뿐이다. 나무와 풀이 너무 많으면, 다음세대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오래된 나무나 풀은 불에 타서 거름이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한 풍요로운 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숲은 죽지 않는다)

 

옛 한옥의 마루는 안방과 건넌방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방에는 구들이 깔려 있지만 마루 아래는 빈 공간이다. 그래서 여름에 마루에 누우면 시원하다. 그가 안동 하회 마을을 둘러보고 옛집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자랐던 외가를 기억에 떠올렸다.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소백산 의풍 마을에서는 지금도 소가 논밭을 간다. 늙은 소를 팔고 어린 소를 사 온 농부는 봄이 되기 전 어린 소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봄이 되면 밭도 갈고 논도 갈 수 있다. 소도 영리한 놈이 있고, 아둔한 놈이 있다. 이렇게 가르친 소는 대략 25년 정도 농사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복된 마을의 매 맞는 소) 

 

그는 어촌에서 마을 어부들과 술을 마시며 생선회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운다. 회를 먹을 때는 양식된 생선과 냉동된 고기는 피해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횟감은 광어와 우럭이다. 하지만 냉동되지 않은 자연산 광어나 우럭은 거의 없다. 이 놈들은 수족관에 넣으면 몇 시간 안에 다 죽는다. 죽으면 도리없이 냉동을 하게 된다. 양식장에서 자란 광어나 우럭은 수족관에서 잘 산다. 거기가 제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비싼 돈 주고 양식이나 냉동된 광어나 우럭을 먹지 말고 도다리를 먹으라고 한다. 도다리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아 양식을 할 수 없다. 광어와 도다리는 비슷하게 생겨 구별이 어렵지만, 광어는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이빨이 없다.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그의 친구 '김용택' 시인이 가르치는 섬진강 덕치마을 아이들의 소박한 생활도 매우 재미있다. 

 

전교생이 17명인 ‘마암분교’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본교에서 보낸 차가 밥을 가지고 온다. 차가 도착하면 6학년이 밥통을 가지러 가고, 1-3학년은 식당에서 줄을 선다. 밥은 5학년이 퍼준다. 다 먹고 나면 6학년이 앞치마를 두르고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4학년이 식판을 모아 챙긴다. 모아놓은 밥찌꺼기는 아이들이 등교하며 집에서 가지고 온 양동이에 6학년이 골고루 나누어 준다. 이 밥찌꺼기는 집에 있는 돼지와 개의 밥이다. (꽃피는 아이들) 

 

작가 김훈은 나보다는 몇 살 연상이긴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옛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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