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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굿 바이, 윌리엄

by 동쪽구름 2023. 3. 13.

나는 그가 죽고 난 다음에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도 10여 년은 지난 일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정거장 벤치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옆에는 바퀴 달린 철제 트렁크 카트에 가방이 실려 있었다. 홈리스임이 분명한데 여느 홈리스와는 달라 보였다. 나이는 50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 벤치는 그의 거처가 되었다.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상가 주변에 무리를 지어 텐트를 치고, 주변에 너저분한 물건과 쓰레기를 널려 놓는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 잠을 자기도 하고, 더우면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기도 하고, 낮에도 술이나 약에 취해 뻘건 얼굴하고 있거나, 혼자 삿대질을 하며 끊임없이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늘 단정한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거처는 깨끗했다. 주변에 휴지조각이나 음식 찌꺼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그가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그 네거리에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본 적은 없다. 아니,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넨 적도 없으며 인사를 나눈 적도 없다. 아내는 몇 번 그에게 담요나 옷가지를 주려고 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고 한다. 최소한 필요한 것만 지니고 살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모두 있어 보였다. 추운 날에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었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수년 동안 한자리를 고수하던 그가 어느 날 사라졌다. 혹시 거처를 얻어 사라졌나 했더니, 한불록 북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맥도널드와 인 앤 아웃 버거가 마주하고 있고, 길 건너에는 스타벅스가 있는, 차도 사람도 많이 오가는 사거리 맥도널드 앞 벤치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다시 그의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비교적 날씨가 온화한 남가주 (Southern California)는 심각한 홈리스 문제를 안고 있다. 거처를 마련해 주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홈리스들이 많다. 값싼 술과 마약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홈리스 상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LA 다운타운의 재개발과 함께 홈리스들의 터전을 없애자, 많은 홈리스들이 외곽으로 나왔다. 

 

내가 사는 밸리에서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사는 홈리스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후리웨이 출구나 쇼핑센터 근처에 진을 치며 사는 홈리스를 쉽게 볼 수 있다. 시청에서 나와 싹 치우면, 금방 다른 곳에 새로 진을 친다. 쫓아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리만 옮겨갈 뿐이다. 

 

LA 시장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홈리스 문제 해소를 들고 나오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 

 

오늘 미사를 끝내고 점심을 사러 맥도널드에 갔는데, 그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꽃이 놓여 있었다. 벤치에는 그가 항상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름이 윌리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도 한때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이고 동생이었으며, 혹시 아내와 자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이제 그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나의 이웃으로 살다 간 윌리엄의 명복을 빈다. 

 

Goof-bye, Will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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