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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컨트리 뮤직의 아웃로 윌리 넬슨

by 동쪽구름 2024. 2. 27.

음악에 대한 취향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80년대 중반, ‘케니 로저스’에 빠져 지낸 시기가 있었다. 그의 음반을 이것저것 사 모았고, 크리스마스에는 그가 부른 캐럴 음반을 들었다. LA에서 60마일 거리인 랭커스터를 오가면서는 '존 덴버'의 노래로 졸음을 쫓았다. 마침 그 무렵, 라디오 코리아가 생겨 한국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뉴스, 저녁 퇴근길에는 음악방송을 들었다. 하지만 라디오 코리아의 전파는 LA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산을 넘으면 라디오 코리아는 물론 주류 FM 방송도 들리지 않았다. 카세트테이프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내 기억 속 ‘윌리 넬슨’은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가게 된 뮤지션, 길게 땋은 머리에 빨간 두건을 쓴 히피였다. 언제부터 그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20년은 된 것 같다. 10 수년 전에는 할리웃 보울에서 그의 공연을 보았다. 
 
CBS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파라마운트 플러스에서 ‘윌리 넬슨과 패밀리’ 시리즈를 보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가출을 했고, 아버지도 재혼을 해, 그와 누이동생 ‘바비’는 대장장이였던 조부 밑에서 자랐다. 6살 때 할아버지가 사준 기타로 음악을 익혀 바비와 함께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노래했다. 7살에 첫 노래를 작곡했으며, 9살 때는 지역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밭에 나가 목화를 따야 했는데, 그는 목화 따는 일이 싫어 댄스홀이나 술집에서 노래를 하며 돈을 벌어왔다. 
 
1950년에 공군에 입대하지만, 9달 만에 허리부상을 핑계로 군복을 벗는다. 그는 엄격한 규율의 군대는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고 말한다. 고향에 돌아와 ‘마아사 매튜스’와 결혼을 한다. 먹고살기 위해 나이트클럽 경비와 자동차 부품 가게, 말안장 만들기와 나무 자르는 등의 일을 한다. 텍사스로 이주한 후, 라디오 방송국의 DJ를 하며 1955년에 첫 녹음을 한다. 
 
그는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한다. 샌디에이고에 자리 잡고자 하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히치 하이크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가려하지만 태워주는 차가 없어 달리는 화물 기차에 올라타려고 시도한다. 기차가 서행할 때 짐을 먼저 던져 올리고, 자신도 올라타려 하지만 기차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타지 못한다. 그를 버스 정거장에 태워다 준 트럭 기사에게서 $10를 빌려 포틀랜드로 간다. 
 
1958년 아들 ‘빌리’가 태어난 후,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휴스턴으로 이주하고 ‘Family Bible’과 “Night Life,’ 노래 두 곡을 $50와 $150에 판다. 그의 손을 떠난 ‘Family Bible’은 1960년에 크게 히트한다. 
 
1960년에 내쉬빌로 이주하며 유명한 뮤지션들을 만나게 되고 그의 노래 ‘Crazy’을 들은 ‘팻시 클라인’이 이 노래를 발표해 크게  인기를 얻는다. 
 
방랑벽의 윌리는 70년대 작곡으로 번 돈을 투어에 투자하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다. 두 번째 부인 ‘셜리’와는 이혼을 하고, 테네시 주의 목장은 화재로 전소가 된다. 발표한 음반도 별 반응을 얻지 못하자, 윌리는 음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텍사스 주 오스틴으로 옮겨 간 윌리는 1972년 3월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 마지막 날 공연을 한 후 여기서 영감을 얻어 다음 해 ‘Fourth of July Picnic’(독립기념일 피크닉)이라는 연례 야외 콘서트를 시작한다. 
 
RCA 와의 계약을 끝내고 애틀랜틱 레코드로 자리를 옮긴 그는 자신의 밴드인 ‘The Family’를 결성하고 누이 바비에게 키보드를 맡긴다. 바비는 밴드에 들어오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호텔에 숙박을 해 보았다고 한다. 
 
윌리 넬슨 하면 대마초를 떠 올리게 된다. 이제 미국 대다수의 주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지만, 그가 RV를 타고 투어를 하던 7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대마초는 불법이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마리화나가 윌리를 구했다고 이야기한다. 힘들던 시절 술에 의존하기 시작한 그는 알코올중독에 이르게 되고, 이때 그를 구한 것이 마리화나다. 마리화나를 피기 시작하며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의 매력은 박자와 상관없이 멋대로 빨라졌다 느려지기도 하는 독특한 창법과 기타 연주일 것이다. 그와 함께 노래를 했거나 연주를 했던 뮤지션들은 하나 같이 윌리와는 박자나 화음을 맞추어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평소 하던 대로 하면 윌리가 알아서 빠르게 또는 느리게 들락날락하며 노래를 하고 기타는 치며 그것이 바로 윌리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에 출연하며 만난 분장사 ‘디 안젤로’와 네 번째 결혼을 해 30년째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둘 사이에 낳은 두 아들이 그의 밴드에서 함께 노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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