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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93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 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유독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70/80 세대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연인들 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쑥스러워 말로는 하지 못하고 편지로 써서 주저하며 건네곤 했었다. 외국 영화를 보면 서양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 영어를 배우며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love”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많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사랑”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과나 바나나를 사랑하고, 야구와 미식축구를 사랑하며, 뜨거운 여름 햇살을 사랑한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미국 사람.. 2020. 6. 29.
5년 일기 얼마 전의 일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어떤 작가가 오래전부터 5년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5년 일기라니? 일기장 한 페이지를 5 등분해서 쓰는 일기란다. 작년 이맘때부터 5년 일기를 시작했다면, 오늘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를 열면 상단에는 작년 오늘의 기록이 나오고, 나는 그 밑에 오늘의 일기를 적게 된다. 그녀는 매일 일기를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 기록을 정리하여 책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여태 그런 일기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아마존에 찾아보니, 정말 그런 일기장들이 있다. 아예 한 줄 일기로 10년짜리도 있다. 5년 치 일기장으로 주문을 해서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물건을 정리하다가 수첩을 몇 개 발견했다.. 2020. 6. 28.
대화가 필요해 어떤 부부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음 출구에 휴게소가 있다는 안내판이 나오자,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요?” 잠시 생각을 하던 남편이, “아니, 생각이 없는데.” 하고는 출구를 지나쳐 계속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차 안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한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소?” 아내가 대답했다. “내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않고 휴게소를 지나왔잖아요.” 어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남편의 입장인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이고, 무엇이 갖고 싶으면 사달라면 될 것을, 아리송한 태도로 남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 2020. 6. 27.
달콤한 유혹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쯤의 나는 죽음을 매우 무서워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연과도 끝이 나며,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도리어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공유할 친구와 친척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하셨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다섯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주가 되었다. 그동안 불치병의 고통 중.. 2020.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