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음104 5년 일기 얼마 전의 일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어떤 작가가 오래전부터 5년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5년 일기라니? 일기장 한 페이지를 5 등분해서 쓰는 일기란다. 작년 이맘때부터 5년 일기를 시작했다면, 오늘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를 열면 상단에는 작년 오늘의 기록이 나오고, 나는 그 밑에 오늘의 일기를 적게 된다. 그녀는 매일 일기를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 기록을 정리하여 책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여태 그런 일기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아마존에 찾아보니, 정말 그런 일기장들이 있다. 아예 한 줄 일기로 10년짜리도 있다. 5년 치 일기장으로 주문을 해서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물건을 정리하다가 수첩을 몇 개 발견했다.. 2020. 6. 28. 대화가 필요해 어떤 부부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음 출구에 휴게소가 있다는 안내판이 나오자,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요?” 잠시 생각을 하던 남편이, “아니, 생각이 없는데.” 하고는 출구를 지나쳐 계속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차 안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한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소?” 아내가 대답했다. “내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않고 휴게소를 지나왔잖아요.” 어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남편의 입장인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이고, 무엇이 갖고 싶으면 사달라면 될 것을, 아리송한 태도로 남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 2020. 6. 27. 달콤한 유혹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쯤의 나는 죽음을 매우 무서워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연과도 끝이 나며,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다. 죽음을 생각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도리어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공유할 친구와 친척이 별로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하셨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다섯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주가 되었다. 그동안 불치병의 고통 중.. 2020. 6. 26.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기리는 사순시기를 맞아 고해성사를 보았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나오는데, 문득 지난 성탄절에도 같은 죄를 고백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고해성사 때마다 늘 반복되는 죄들이 있다. 다른 이들 쪽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한 죄가 그러하며, 좀 더 너그러이 사랑하지 못한 죄가 그러하다. 형사법에서는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되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삼 진법'이라는 것이 있어, 3번 이상 형사법을 어기게 되면 엄한 벌을 받는다.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짓는 내게 가중처벌 대신 용서의 자비를 베풀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일상에서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거나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죄를 짓는 .. 2020. 6. 25. 이전 1 ··· 22 23 24 25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