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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93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기리는 사순시기를 맞아 고해성사를 보았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나오는데, 문득 지난 성탄절에도 같은 죄를 고백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고해성사 때마다 늘 반복되는 죄들이 있다. 다른 이들 쪽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한 죄가 그러하며, 좀 더 너그러이 사랑하지 못한 죄가 그러하다. 형사법에서는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되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삼 진법'이라는 것이 있어, 3번 이상 형사법을 어기게 되면 엄한 벌을 받는다.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짓는 내게 가중처벌 대신 용서의 자비를 베풀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일상에서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거나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죄를 짓는 .. 2020. 6. 25.
시골쥐와 서울쥐 3월 중순의 일이다. 뒷동산에 핀 야생화 사이로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10 수년 전, 퇴근길에 이런 나비 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봄이었지 싶다. 신문을 보니 멕시코에서 겨울을 나고 온 일명 ‘제왕나비’라고 불리는 ‘모나크 나비’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자칫 나방 같은 모습이지만, 꽃잎에 앉은 것을 보니 화려하고 아름답다. 마침 집에서 일을 하는 날이라 혼자 보기 아까워 회사 동료들에게 나비 소식을 알려주며 점심시간에 잠시 밖에 나가 걸어보라고 했다. 다음날 출근해 물어보니 대답들이 신통치 않다. 나비가 없더란다. 정말 나가보기는 한 걸까? 나와 늘 함께 점심을 먹는 동료들은 모두 다운타운 근처의 콘도나 타운하우스에 산다. 빌딩 숲에 가려진 도심에서 야생화나 나비를 보기는 쉽지 않다. 전.. 2020. 6. 23.
나의 버킷 리스트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그 어원은 중세 혹은 미국 서부 개척기 시대, 사람의 목에 밧줄을 걸어 서까래에 매단 후 발을 받치고 있던 양동이를 (bucket) 차 버리면 목을 조여 죽게 된다는 “kick the bucket” 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한 목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버킷 리스트란 말이 단순히 유행어의 수준을 넘어 삶을 재정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잡지에 실린 남들이 적어 놓은 버킷 리스트를 보다 잠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이루어진 듯싶다. 미래.. 2020. 6. 22.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말하는 법이다 주일미사를 시작하며 바치는 고백 기도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생각은 말로, 말은 곧 우리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목적이 있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들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조금씩 커지고 무거워져 어느 순간 마음으로 뚝 떨어진다. 일단 마음에 들어온 생각은 언젠가는 말이 되어 나가고, 그 말은 결국 행동으로 이어진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고, 어떤 글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제는 글뿐 아니라 말도 쉽게 지울 수 없다. 철없던 시절에 소셜 네트워크에 남겨 놓았던 글에 발목을 잡히거나, 누군가와 비밀스럽게 나누었던 말이 공개되어 곤란을 겪는 일들을 보게.. 2020.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