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17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읽으며 다시금 하루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일상과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된다. 음악을 듣거나, 차 또는 술을 마시며 떠오르는 단상, 길을 가다 문득 눈을 들어 본 주변의 사물, 버스나 전철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지나가며 듣는 낯선 이들의 대화가 모두 글이 된다. 이 책에는 1984년 ‘Classy’라는 잡지가 창간된 때부터 이 년 동안 일레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와 연재했던 글과 그림을 모은 것이다. 하루키의 글만큼이나 미즈마루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절반은 글이고, 나머지는 그림이다. 하루키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이 책에 실린 글을 썼고, 머리에 떠오른 것을 술술 써서 .. 2024. 1. 3. 수채화 I (6) 학기도 곧 끝이 난다. 아내의 도자기 클래스는 그동안 두 번 휴일도 있고, 교수가 일이 있어 한 주 일찍 끝나는데, 수채화 반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 요즘 과제물을 학기 초 작품과 비교해 보면 한눈에 차이가 드러난다. 학기 초, ‘테리’라는 이름의 백인 영감이 다가와 수채화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주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오래전 CSUN에서 수채화를 공부했는데, 그동안 손을 놓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아하니 외로워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노인과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난 수채화는 처음이며 아는 것이 없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는 그와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로 지냈다. 학점과 상관없는 청강생인 그는 학기 초에는 과.. 2023. 12. 1. 수채화 I (5) 할로윈도 예전 같지 않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는 할로윈 저녁이면 온갖 치장을 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동네를 돌며 사탕을 받아 갔다. 해 질 녘에 시작한 “trick or treat!” 은 밤까지 이어져 8-9시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은 할로윈 저녁에 동네를 도는 아이들 보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아이들보다는 성인들의 명절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금년 가을에 대학에 간 조카 녀석에게 물어보니 캠퍼스와 기숙사에서 주말에 몇 개의 파티가 있었고, 할로윈 저녁에도 파티가 있다고 한다. 할로윈 저녁, 우리 집에는 딱 한 사람 건넛집 꼬마가 왔다 간 것이 전부다. 할로윈 다음날 학교에 가니 교수가 어제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인지 ‘스니커즈’ 초콜릿을 가지고 와 하나씩 나누어 준다... 2023. 11. 3. 2022년 크리스마스 연중무휴 문을 여는 쇼핑몰도 일 년에 4번, 1월 1일,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는 문을 닫는다. 이 중, 미국의 최대 명절은 뭐니 뭐니 해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다. 1월 1일은 그전날인 12월 31일 자정 카운트다운을 보고 새벽까지 놀다가 늦잠을 자는 날이며, 부활절은 교회에 가는 날이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진정한 가족 명절이다. 눈을 헤치고 차를 몰아 고향에 가고, 가족끼리 모여 음식을 먹고 선물을 나눈다. 대부분의 식당도 이날은 문을 닫고, 밤늦도록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 가게들도 저녁 일찍 문을 닫는 곳이 많다. 미국에 와서 40년 가까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가족 모임을 해 왔다. 그동안 아이들이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식구가 늘어났고, 아내는 나이가 들어.. 2022. 12. 27.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