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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클래스

수채화 I (6)

by 동쪽구름 2023. 12. 1.

학기도 곧 끝이 난다. 아내의 도자기 클래스는 그동안 두 번 휴일도 있고, 교수가 일이 있어 한 주 일찍 끝나는데, 수채화 반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 요즘 과제물을 학기 초 작품과 비교해 보면 한눈에 차이가 드러난다. 
 
학기 초, ‘테리’라는 이름의 백인 영감이 다가와 수채화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주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오래전 CSUN에서 수채화를 공부했는데, 그동안 손을 놓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아하니 외로워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노인과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난 수채화는 처음이며 아는 것이 없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는 그와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로 지냈다. 학점과 상관없는 청강생인 그는 학기 초에는 과제물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드나들더니 얼마 전부터는 그림을 그려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가져온 과제물을 하나씩 검토하며 의견을 나누고, 강의와 다음 과제에 대한 교수의 설명이 끝나면 휴식시간이다. 이때 학생들은 준비해 온 간식을 먹거나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 온 음식을 먹는다. 휴식 시간이 끝나면, 2시까지는 교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나는 교실에서는 집중이 안되고, 제한된 시간에 그림을 끝내기도 어렵다. 얼마 전부터는 자료를 찾아보고 스케치를 하다가 중간에 슬그머니 나온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몇 사람은 일찍 자리를 뜬다.
 
지난 수요일에도 다음 과제물에 대한 교수의 설명이 끝나고 나니 12:30분이 조금 넘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모두들 나가고 없다. 가방을 들고 나와 점심을 먹으러 카페테리아로 갔다. 대개는 아내가 싸 준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날은 과일과 간식만 주어 터키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는데, 곁에 테리가 있다. 이미 샌드위치를 사서 손에 들고는 계산을 하는 내 곁에서 계속 말을 걸어온다. 
 
결국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42년 생이며 재향군인이고, 아내와는 이혼을 해 혼자 살며 (그는 그녀의 5번째 남편이었다고 한다), 2천여 명이 나오는 큰 교회에 나가고,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서 블록파티를 하는데 모형 기차 세트를 작동하는 일을 맡아 요즘은 오후에 교회에 가서 세트장 만드는 일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하노라 내가 점심을 다 먹은 후까지 바나나를 손에 들고 있던 그가 바나나 먹기를 끝내자, 헤어져 도서관으로 갔다. 
 
또 한 명의 외로운 영혼을 알게 되었다. 
 

8주 차 과제물

 

9주 차 과제물

 

10-12주 차 과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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