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14 고령자의 가을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며칠 전 날씨 앱을 보니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서 히터의 온도를 69도에 맞추어 놓고 잤다. 새벽에 두어 차례 히터가 돌았다. 어제는 아내가 침대의 이불을 바꾸고, 그동안 쓰던 여름용 이부자리를 세탁했다. 얼마 전까지 하늘을 향해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던 뒷마당 나무의 잎사귀들도 모두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울긋불긋 가을색으로 물들어 간다. 성급한 놈들은 벌써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다. 아침에 카이저 보험에서 부스터 샷을 예약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내게만 오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내에게는 오지 않았다. 신문을 펼치니, 65세 이상의 고령자부터 먼저 놓아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럼 내가 고령자란 말인가? 나보다 몇 살 아래인 한국의 지인은 얼마 전에 “아버님” 소리를 들.. 2021. 10. 31. 작은 아버지 동생 부부와 함께 며칠 전 89세 생신을 맞으신 작은 아버지를 뵙고 왔다. LA 동남부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있는 신도시 매니피 (Menifee)에서 55세 이상 시니어들만 사는 주택단지에 20여 년째 살고 계시다. 작년에는 많이 아프셔 한동안 병원에 입원도 하셨었다. 그놈의 코로나 탓에 1년 넘게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나도 백신을 맞았고, 작은 아버지 내외분도 백신을 맞으셨다고 해서 갔다. 마침 간호사가 오는 날이니 조금 일찍 와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해서 토요일 아침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매니피는 우리 집에서 100마일이 넘는 거리며, 차로 2 시간 이상 걸린다. 가서 뵈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내가 기억하는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작은 어머니는 늘 깔끔.. 2021. 3. 16. 존엄한 죽음 코로나로 시작한 칩거도 이제 2년 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게 된다.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를 보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이미 한쪽 팔은 쓸 수가 없고 다리도 불편한 중년 여성 ‘릴리’가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그들의 가족, 절친을 집으로 불러 때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녀가 큰딸의 아들인 손자와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손자가 “할머니, 어른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쓸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답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통찰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생은 그냥 살아보아야 .. 2021. 3. 10. 오베라는 남자 소설은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59세의 ‘오베’라는 남자가 자살을 계획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도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하여 해고되기 전까지 43년을 철도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사브가 아닌 차는 사려고 하지 않으며, 인정하는 차는 오직 스웨덴제 볼보밖에 없다. 그 좋아하던 사브도 제네럴 모터스가 주식을 인수하자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오베가 이웃과 겪는 희로애락의 일상과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풀어놓는다. 그는 변화를 싫어하며 틀에 박힌 일상을 좋아한다. 원칙을 고수하고 불같은 성질을 가진 고집불통의 사내다. 하지만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는 매일 죽은 아내의 무덤에 꽃을 사 가지고 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2020. 10. 27.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