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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12

존엄한 죽음 코로나로 시작한 칩거도 이제 2년 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게 된다.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를 보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이미 한쪽 팔은 쓸 수가 없고 다리도 불편한 중년 여성 ‘릴리’가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그들의 가족, 절친을 집으로 불러 때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녀가 큰딸의 아들인 손자와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손자가 “할머니, 어른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쓸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답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통찰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생은 그냥 살아보아야 .. 2021. 3. 10.
오베라는 남자 소설은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59세의 ‘오베’라는 남자가 자살을 계획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도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하여 해고되기 전까지 43년을 철도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사브가 아닌 차는 사려고 하지 않으며, 인정하는 차는 오직 스웨덴제 볼보밖에 없다. 그 좋아하던 사브도 제네럴 모터스가 주식을 인수하자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오베가 이웃과 겪는 희로애락의 일상과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풀어놓는다. 그는 변화를 싫어하며 틀에 박힌 일상을 좋아한다. 원칙을 고수하고 불같은 성질을 가진 고집불통의 사내다. 하지만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는 매일 죽은 아내의 무덤에 꽃을 사 가지고 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2020. 10. 27.
노인들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올리브 어게인’을 읽었다. 퓨울리쳐 상을 받았던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 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무대는 메인 주 코스비라는 작은 마을이다. 그냥 순서 없이 한 편씩 읽어도 좋은 단편을 모아 만든 연작소설집이다. 각자 참으로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 한 마을에 모여 살며 우여곡절을 이겨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누군가에게서 들은듯한 사연들을 담고 있다. 슬픈 일도 너무 슬프지 않고, 화나는 일도 크게 화나게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으로 끝이 난다. 이 책은 특히 인생의 막바지, 노년을 담고 있어서 노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마냥 칙칙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내가 .. 2020. 9. 5.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는 어르신 소리를 듣는 나이의 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다. 저자 ‘사노 요코’는 전 세계에서 4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밀리언셀러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까지 쓴 꼼꼼한 생활 기록이다.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한 에세이집이다. 내 나이도 이제 그녀가 이 책을 쓰던 무렵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낌 없는 문장과 화술에 시원함을 느낀다. 또한 과거 일본인들의 삶이 내 어린 시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행기 연료로 쓰기 위해 소나무 뿌리를 캐던 그녀의 사촌언니는 어린 나이에도 이래 가지고는 결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 2020.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