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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20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력이 나날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치매에 걸려 요양시설에 살고 있는 아내는 그가 아들과 방문을 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혼자 집에 남은 그는 아내가 쓰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고 그리울 때면 꺼내어 그녀의 향기를 맡는다. 이제 그 병의 뚜껑을 여는 일도 쉽지 않다. 매일 요양보호사들에 집으로 와 그의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시켜준다. 요양보호사들은 그에게 기저귀를 권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자주 실례를 한다. 오랜 친구 ‘투레’와 반려견 ‘식스텐’이 유일한 기쁨이다. 다른 도시에 살며 역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투레와는 자주 전화를 한다. 아들 ‘한스’가 있지만 좋은 관.. 2025. 11. 7.
노인력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전위 예술가, 작가, 그리고 초예술 토마손과 (일본에 진출한 미국 야구 선수 게리 토머슨을 보고 만든 용어. 기능적인 역할이 없지만 예술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구조를 칭한다.) 노상관찰학의 제창자였다. 90년대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이니, 25년이나 지났다. 이 책을 썼던 무렵, 그의 나이는 60대 초반. 요즘은 60대를 노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60대가 되면 노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력은 노인들이 나이가 들며 겪게 되는 일들을 노쇠현상이 아닌 노인에게 생기는 능력으로 본다는 의미다. 디지털 문화가 젊은이들의 것이라면, 아날로그 적인 것은 노인력에 속한다. 책으로 들어가서,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중학생 .. 2025. 8. 17.
시니어 센터 6월 중순,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서머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듣는 미술 클래스는 없다.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마작을 배워 보기로 했다. 2년 전 일을 접고 난 후, 집 근처 시니어 센터의 메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더니 매달 뉴스레터가 온다. 시니어 센터에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는데 마침 마작도 있다. 마작 모임이 있는 수요일, 처음으로 시니어 센터를 찾았다. 12시에는 초보자들에게 마작의 기본 룰을 알려주고, 1-3시 사이에는 마작을 한다. 12시에는 나를 포함 신참 3명이 그룹의 리더 격인 ‘메리’에게서 설명을 들었다. 1시가 되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홀로 자리를 옮기니 20명가량이 모였다. 같이 설명을 들었던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2025. 7. 23.
너 늙어봤냐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건 요즘 내가 즐겨 듣는 서유석의 노래 제목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젊은 사람들 눈에는 나이 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을 듯싶겠지만, 살아보면 이 나이에도 새로 경험하고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난 어려서부터 냉수만 마셨다. 할머니가 누룽지를 끓여 구수하게 만든 숭늉을 드시며 “시원하다”하는 것이 도무지 생소하고 낯설었다. 받아 놓은 물은 차갑지가 않아, 추운 겨울에도 마당의 수도에서 갓 받는 얼음 같은 냉수만 마셨다. 우리 집 정수기에서는 온수, 냉수, 상온, 이렇게 세 가지 온도의 물이 나온다. 어느 날부터 냉수 대신 상온의 물을 마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게다가 누룽지를 끓인 물이 구수하니 맛있어졌다. 점심을 잘 먹은 날은 끓.. 2025.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