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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읽으며 다시금 하루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일상과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된다. 음악을 듣거나, 차 또는 술을 마시며 떠오르는 단상, 길을 가다 문득 눈을 들어 본 주변의 사물, 버스나 전철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지나가며 듣는 낯선 이들의 대화가 모두 글이 된다. 이 책에는 1984년 ‘Classy’라는 잡지가 창간된 때부터 이 년 동안 일레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와 연재했던 글과 그림을 모은 것이다. 하루키의 글만큼이나 미즈마루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절반은 글이고, 나머지는 그림이다. 하루키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이 책에 실린 글을 썼고, 머리에 떠오른 것을 술술 써서 .. 2024. 1. 3.
여자친구 8살에 미국에 온 준이가 지난가을에 대학생이 되었다. 처조카인 준이가 우리와 살게 된 사연은 매우 갑작스럽고 슬픈 일 때문이다. 11년이나 지난 일이다. 어느 날 새벽,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늘 불길하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라 서울에 사는 처남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처남은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 후, 준이는 미국에 와서 우리와 살게 되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내게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꼬마 녀석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하고 잔소리해 대는 나이 많은 고모부와 살며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한국에 가고 싶다는 투정 없이 힘든 세월을 잘 견디어 주었다.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 인사만 겨우 익힌 아이를 학.. 2023. 12. 31.
병원 이야기 (6)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12/23),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이 손주들과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선물도 풀고, 놀다가 돌아간 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작은 핏덩이가 나왔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음날 (12/24), 낮에 그리고 저녁에 두 차례 또 핏덩이가 나왔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보니, 피가 녹아 있는 듯 핑크빛이다. 열도 없고 아픈 곳도 없어 큰 병은 아니지 싶어 내일쯤 의사에게 연락을 해야지 하고 또 하루를 보냈다. 12월 26일, 의사와 전화 면담을 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니, 마침 주치의에게 빈 시간이 있다. 오후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일단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카이저에.. 2023. 12. 29.
2023년 크리스마스 식구도 많아졌고 아내도 힘들어해서 최근 몇 년은 명절 가족모임을 식당에 가서 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딸(세미)네와 막내아들(브라이언)네가 못 온다고 해서 큰 아들(세일)네와 집에서 밥을 먹었다. 12월 초, 블랙앵거스 스테이크 집에 일치감치 16명 예약을 해 두었는데, 아내가 올망졸망 아이들과 식당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며 집에서 모이자고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집에 와서 다시 디저트와 과일을 먹게 되니 그냥 한자리에서 끝내자고 한다. 예약을 취소하고 두 군데 식당에 음식을 주문했다. 가족이 모이기로 한 토요일, 세일이가 먼저 오고, 세미가 왔다. 샌디에이고에서 올라오는 브라이언은 좀 늦는다고 해서 모인 사람들끼리 먼저 점심을 먹었다. 투고해 온 음식을 펼치니 푸짐하다. 모두들 맛나게 먹.. 2023.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