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맑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늘 걱정 가득한 얼굴로 슬프게 지내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늘 그렇게 슬픈 표정이세요?"
"내게는 우산장수를 하는 큰 아들과 염전을 하는 작은 아들이 있다오. 햇볕 쨍쨍한 날에는 큰아들이 우산을 못 파니 슬프고, 비 오는 날에는 작은 아들 염전의 소금이 다 녹아 슬프다오.”
그러자 젊은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반대로 생각하시면, 비 오는 날엔 큰 아들 우산이 잘 팔려 기쁘고, 맑은 날엔 작은 아들의 염전이 잘 되니 기쁜 일 아닌가요?”
내게는 자녀도 여럿이고 손자는 그 보다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늘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다. 어떤 놈은 달리기를 잘해 전국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고, 다른 놈은 감원으로 직장을 잃어 실업자가 되고, 무슨 섭섭한 일이 있는지 잠시 소원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던 인심을 쓰는 놈도 있다. 나도 이제 요령이 생겨 일일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세상사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 더러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더라도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줄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특별하며 대단하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 장편소설 한 편은 쓰고도 남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맥도널드에서 시니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그 정도의 이야깃거리는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말을 안 할 뿐이다.
60여 년 살아보니 (70, 80, 또는 90대의 독자들 중에는 ‘이 친구,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생은 제로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쁨을 플러스, 고통을 마이너스라고 보고, 그 숫자를 합산해 보면 생의 끝자락에서는 제로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다.
2022년 말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다. 지구나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찰나일지 모르지만, 8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이나 고통은 매우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쁨도 고통도 실은 순간이다. 나머지 세월은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사람들은 기쁨의 여운은 금방 잊고, 고통의 후유증은 오래 간직한다. 그래서 나만 유독 힘든 세월을 산 듯한 착각에 빠질 뿐이다.
구멍가게 주인도 매상을 걱정하고, 재벌도 영업을 걱정한다. 사장도 돈 걱정을 하고, 그달 벌어 그달 먹고사는 종업원도 돈 걱정을 한다. 크기와 금액만 다를 뿐 누구의 걱정이 더 큰 가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가장 큰 걱정이다.
걱정한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으며, 걱정한다고 다가올 일을 막을 수도 없다. 과거와 미래에 정신을 빼앗겨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실수다. 어떤 것이 행복이고 불행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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