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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가 언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는가는 익히 알려진 일이다. 1978년 4월, 어느 쾌청한 날 오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센트럴리그 개막전 때의 일이다. 1회 말 미국인 선수 힐턴이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2루타를 친 순간, 그는 뜬금없이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고, 시합이 끝나자 전차를 타고 신주쿠의 서점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다. 그리고 그는 밤늦게 가게 일을 끝내고 주방 식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거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그 후 그가 어떻게 소설가로 성장을 했으며, 왜 오랜 시간 일본을 떠나 작품 활동을 했고, 미국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2024. 6. 17.
아크릴화 I (6) 학기가 끝이 났다. 마지막 과제물은 기억 속 한 장면, 또는 물건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무, 유리, 철판 등, 캔버스가 아닌 표면에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 상자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큰 물건을 살 때 따라온 골판지를 골라 주었다. 두툼한 골판지였는데, 판지 사이의 물결 모양 골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멋진 효과가 생겨났다.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추상화는 대상을 잘 관찰하고 이미지를 잘라 작가 나름 해석을 해서 그리는 그림이다. 나는 세 가지 스케치를 해서 교수에서 보여 주었다.  내가 선택한 세 가지 소재는 (1) 역마차와 말 – 내 나이 6-7살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아직 소아마비를 고쳐보겠다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때다. 침과 뜸 치료를 받고 있었.. 2024. 5. 30.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학기가 끝나 간다. 이제 2주 남았다. 학기는 끝나가는데, 그림이 늘었다는 생각보다는 자꾸 “아, 나는 그림 그리는 재능은 없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범학생이다. 수업에 빠진 적도 없고, 과제물이 늦은 적도 없다. 배운 대로, 담당교수의 가르침대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학기가 끝나가는 요즘 그림이 늘었다는 느낌보다는 이것이 나의 한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만점을 받았는데, 두 번째 그림에서는 C를 받았고, 이번에 제출한 그림도 기대에 못 미칠 것 같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소재에 창의력이 없다. 교수가 정해준 틀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모두가 비슷하게 그리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 이때는 테크닉에 따라.. 2024. 5. 23.
나는 경비원입니다 한동안 책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소회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느 때부턴가 마치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원고를 생각하고, 인용할 구절에 표시를 하고. 책 읽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다. 그냥 전처럼 재미로 책을 읽고 싶었다.  ‘패트릭 브링리’의 자전적 이야기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아내가 교우에게서 선물 받은 책이다. 책이 읽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책을 몇 권 빌려 주었더니, 몇 달 만에 돌려주며 선물로 주었다. 난 이 책을 열기 전까지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대학 졸업 후 시사 주간지 ‘더 뉴요커’에 다니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커리어.. 2024. 5. 21.